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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Aug 04. 2021

선생님은 즐거우세요?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2019년 5월 15일 스승의 날,

나는 학생에게 위협을 받았고,

공황장애를 얻었다.


2년이 지나가면서 다시 일상을 되찾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듣던 '마음 챙김'에 대해

배우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 공황이 물러갈 즈음,

다시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이전 글 참고)


어제는 3주 만에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8개월 만에 공황발작이 있었던 이유를

이야기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을 숨기자니 치료과정에 좋지 않을 것 같고,

그 모든 과정을 말하자니 부부 사이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이 부끄러웠으며

말하고 싶은 의지가 부족한 상태였다.


사실, 지난 발작 이후 컨디션이 다운된 상태이다.

약한 우울감이 지속되고 있다.

주저리주저리 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에너지가 없다는 게 맞겠다.

요즘은 복잡한 머릿속을 흘려보내고 싶어

몸을 더 많이 움직인다.


아침마다 등산을 한 지 2주가 흘렀다.

눈 뜨자마자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리고 나면,

다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가 차오른다.


잠은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선물하지 못한다.

매일 밤 나는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고서도

1시간 정도 뒤척이고 나서야 잠이 들곤 한다.


냉기가 흐르는 집안에서 에너지를 채울 수 없으니

(나의 인디언 텐트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내향인인 나는 다른 공간에서

충전을 해주어야 한다.

다행히 조용한 산과 공원이 많은

생태 그린 동네에 사는 덕분에

자연에서 쉼을 얻곤 한다.


오늘도 산책을 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린 후

병원으로 향했다.

머릿속은 지난 3주를 복기하며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대기 4시간 만에 주치의 선생님과의

진료가 이루어졌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예약이 안된다.

한 명, 한 명 성심을 다해 상담해주신다.

물론 따로 상담비는 받지 않으신다.

기본 진료시간이 경우에 따라

30~1시간이 될 때도 있다.

초진은 더욱 긴 경우도 있다.

진료받기 위해서 전화는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

물론 예약이 아니라 당일 접수가 가능한지도...)


걱정과 달리 막상 주치의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하니 참았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추하고 서로의 밑바닥을 드러낸

부부 싸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에 대해 오해했던

벽을 허물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일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도 지겹도록 반복된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몇십 년을 공부하고

일하신 분의 이야기는 귀한 조언이 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심연의 그림자와

그것으로 인한 방어기제까지

선생님은 꿰뚫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신다.


주치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일 이 작은 진료실에서

나와 같은 환자들 몇십 명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주치의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즐거우세요?'

묻고 싶었지만, 결국 묻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주치의 선생님도

관계나 일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을까...?

아니면 알고 있는 지식을 삶에 잘 적용하며

다양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고 있을까...?

.

.

.

3주에 한 번씩 있는 병원 진료가

여전히 두려우면서도

(나의 못난 모습을 늘 스스로 이야기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든다.)


상담을 통해 깨닫는 점이 많아서 다시 찾게 된다.

물론 약의 지속적인 복용도

나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나에겐 잠의 질이 무척 중요해졌고,

약은 잠이 깊게 들게 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수면제를 뺀 지금, 심리적 영향이 크다고들 하지만 이상하게 먹고  안 먹었을 때

새벽에 깨냐 안 깨냐의 차이가 있다.

무의식 중에조차 약에 의존하고 있는 건가...?)



한 손에 가득 담긴 약을 삼킨다.

매일 밤 잠자기 직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는다.


그래도 안 낫는다.

그리고 안 죽는다.

언제나 내일이 온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일상이 지나가고 나는 약을 먹고

3주 뒤에 또 병원 진료를 받을 것이다.

나는 매일 등산을 할 것이고

하루를 살아갈 것이고

한 줌 먼지처럼 떠도는 존재이지만

나라는 존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크게 숨 한번 쉬지 못하고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앙금을 품은 채

매일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린다.


땀을 흘리면 분명 에너지가 소진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들끓기 시작하는

생을 향한 욕망을 품게 된다.


지나간 날을 되새김질하며

공황장애 환우의 일상을 기록하며

생을 향한 활을 아 올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작은 공을 쏘아 올린 난쟁이처럼...




어제가 아닌 3주 전에 적은 글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퇴고하며 글이 반토막이 되네요.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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