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미상처 받았거든요.
"대체 왜 그렇게까지 우는 거야?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날카롭게 꽂히는 말에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언제부터 우리를 굳게 연결시켜 준다고 믿었던 운명의 빨간 실이 끊어진 걸까...
나의 상처를 조금도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의 말은
지금 내 상황을, 감정을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나를 절망에 빠뜨렸다.
"힘들지, 아프지...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
"......"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다. 아니, 설명한다고 저 사람은 알아들을까?
우리는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지만 둘 중 한 명은 분명 화성어로 떠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화성인과 대화하고 있다.
그러니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있다.
반복... 은 강조를 의미하지만, 우리는 수천번을 반복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서로가 내뱉는 소음은 허공을 맴돌다 공기 중에 흩어져버렸다.
나는 입을 닫았다. 나는 구멍 난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내 영혼을 손으로 잡아 다시 쑤셔 넣기에 바쁘다.
슬라임처럼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영혼이 어느새 저 멀리 등을 보이며 방문을 나간다.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마음을 문을 닫았다.
벌써 몇 달째 우리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
시작은 나의 변화였다.
학교, 집, 도서관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융통성이라고는 제로였던 사람이
공황장애를 앓고 나서 변했다.
공황장애는 나에게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평생 제대로 삶을 누려본 적이 없었기에 억울했다.
나도 모르게 베란다를 향해 걸어가던 2019년 10월의 어느 날,
죽음의 코앞에서 나는 삶을 선택했다.
머리가 아니라 나의 몸이 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극심한 공황발작이라는 형태로...
첫 공황발작은 학교현장에서 시작되었다.
2019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어쩜 날짜도 기가 막히다. 그날 날씨도 기가 막히게 햇살이 따스했다.
(그날의 사건은 저의 책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를 읽어주세요)
그 후, 정확히 5개월 뒤
좋아하던 여배우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베란다로 나갔다.
집에서 누워서 죽어가며 신경정신과 약물로 버티던 사람,
빼빼 마르고 사지에 멍이 가득한 좀비가 고통을 벗어나고자 발을 떼었다.
그 순간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바람이 내 몸 구석구석을 통과할 때,
내 머리보다 먼저 몸이 알아차렸다.
...
제대로 살고 싶었다.
실패한 인생이 싫었다.
신경정신과 질병은 나에게 루저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이제 끝이다라고 절망했다.
인지 오류는 강박의 끝에서 모래지옥에 빨려 들어갔다.
합리적 사고가 불가능했고, 스스로를 수없이 자책했다.
정신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대체 그동안 경험한 많은 일들은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고,
신은 대체 있긴 한 것이냐고 원망했다.
(본래 신은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에게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관여하지 않는 공정한 분이시다)
...
내 전두엽의 오작동과 달리 나의 뇌간은 생존 경보를 울렸다.
가슴의 조임과 통증이 몰려왔고
과호흡 증세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부족은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자 손발이 떨렸고 충분한 산소가 뇌에 공급되지 않았다.
어지럼증과 두통, 구토 증상이 단 몇 초사이에 동시에 시작되었다.
'죽는 것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이구나' 생각하며
공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걸쳐 입은 옷이 축축이 젖어
한기가 느껴질 때쯤 모든 것이 멈췄다.
공포도 통증도 고통도... 거짓말처럼...
그렇게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비를 맞은 나비처럼 비틀거리는 영혼만이 남았다.
그 날부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이기적(self-love)이고 본능적으로 나를 사랑한다.
나를 보살핀다.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 나에게 집중한다.
당신도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say 정윤진의 삶의 목적문
2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