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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Mar 26. 2021

이해한다고 아프지않은 건아니에요(2)

앎과 삶이 일치한다는 건?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숨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구겨진 종이 같은 나를 다림질하듯 펼쳐서

세상 앞에 당당히 서고 싶었다.


나는 뾰족했고, 

누구라도 날카롭게 찌를 것처럼 예민했다.


나의 이성은 책을 읽고 지식을 욱여넣으며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감정은 이성이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상황에 강하게 저항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억지로 합리화하는 이성에 반대했다.


네 몸을 좀 봐,
지금은 스스로를 치료할 때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공황발작,

꿈을 꾸면서도 긴장과 함께 찾아오는 발작, 

나에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지옥의 바다에 표류하는 시간 속을 헤맸다.


대체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기에 

반복적인 발작이 찾아오는 걸까?


감정을 발산하는 방법을 몰랐던 내 안에는

제대로 타버리지 못한 

검은 재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구석에 웅크러져 모여있었던 건지,

닦아내고 닦아내도 검정 가루가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서 나는

'피해자'였다.

아니,

'피해자'여야 했다. 


나는 지금 아프니까, 

그리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있으니까.

남 탓을 해야만

나를 지킬 수 있는 불안한 영혼이었다. 


죽고 싶은 아픔 속에서

웃으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미웠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를 괴롭히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찾아내려 할수록

나는 작고 초라해졌다.


나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상실하고 있었다.


시선은 늘 밖을 향해 있었고

행복한 사람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싶었다.

그런 나를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쟤가 나보다 나은 게 뭔데,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거야?'


'좀 잘 나간다고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타인과의 반복되는 비교는

어느 공간에 있어도

나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어디를 가도 모든 사람이 내 괴로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 보다 빛나는 모든 사람이 싫어졌다.


잘 나가는 저 사람들은 고민도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도 안 하겠지?




어느 날,

'저 사람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백조의 발버둥을 보았다.

나도 항상 그 사람들을 비교하곤 했다. 


'삼성 하고 애플 중 무엇이 더 낫니?'처럼...!!!


모든 사람은 살면서 자동적으로 비교를 한다. 

영어 단어에 

Envy(부러움, 선망)와 Jealousy(질투, 시샘)이 있다. 

Jealousy가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잃고 증오의 감정에 매몰된다.


Envy의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이 보이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사람의 장점이 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저 장점을 어떻게 내 걸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그 사람의 장점이 나만의 장점으로 재탄생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사용하는

'위닝 멘탈리티'라는 용어가 있다. 

승리의 정신, 즉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내가 분명히 저 사람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자부심을 높이고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습관이 되게 한다. 


스스로의 장점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통해

어느 순간 깨달은 게 

"난 나여서 아름다워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워"

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형식적으로 위로할 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이 말이



남과 비교하는 시간을 흘러 보내고

나를 찾아가는 경험을 통해 체화되었다.


"나는 존재 자체로 아름다워"


내가 존경하고 선망하는 사람들을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노력과 과정을 통해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을까?'

그 발자취를 탐색하며 따라가다 보니,

그들이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봤을 때 누군가가 반짝거리고 

내가 못 가진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의 '한 부분'일뿐,

그 사람 자체를 '나의 존재'와 비교할 순 없다.


그녀의 장점은 차분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는 것이야. 나는 기본적으로 목소리 톤도 높고 덜렁대는 편이라서 그녀의 그런 점이 부러워. 그럼 나에게 맞는 '차분함'이란 어떤 것일까?


이처럼, 다른 사람을 질투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비교를 하는 때가 찾아오면

한 단계 성장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들과 비교하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감정의 뿌리를 모르고 

질투 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스스로의 내면이 뒤틀어지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존감은 롤러코스터처럼

누구나 낮아졌다 높아졌다 하는데

낮아졌을 때 스스로를 믿어주고 챙겨줘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고 가시가 돋게 되는데, 
이 가시가 필요한가요?
아니면 제거해야 되는 건가요?

가시는 내 안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기에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정화하고 승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나를 제대로 아는 것뿐이다...




이 모든 프로세스가 머리는 다 이해하는데,

마음은 왜 여전히 아픈 걸까요?

.

.

.

나에겐 창작의 과정 자체가 치료과정이 된다.

그리하여

오늘도 쓴다.



카타르시스: 감정정화 혹은 감정 분출로 번역되며

힘들 때 슬픈 음악을 듣거나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울면 감정정화를 경험한다.

승화: 예술 매체로 사회적 인정을 받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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