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의 부재
어제는 양평 처갓집에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방문에 죄송한 마음이 많았음에도 반갑게 맞아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감사하다.
많은 사위들처럼 나도 거의 빈둥거리는 시간이었다.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밥만 축내는 그런 일상. 내가 나중에 사위를 들이면 나 같은 사위는 좀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빈둥거림의 끝을 보였다.
너무 빈둥거리는 게 눈치가 보여 아들 하준이와 벌집을 구경하러 갔다.
양평 아버님은 양계장을 한다. 농지에 수박 비닐하우스를 하는 이유로 양봉도 같이 하고 계신다. 일이 엄청 많으신데, 내가 할 줄 아는 게 정말 별로 없다. 손대면 망가뜨리는 마이너스의 손이라 일 돕겠다고 나서지도 못하는 그런 입장이다. 곤란하다.
벌집 통에 꽤 많은데, 비닐하우스 입구에 있는 벌통을 구경했다. 입구로 들어가는 벌과 나오는 벌이 부딪치거나 싸우지 않는다.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들어가는 벌들의 다리에는 꽃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나올 때는 다 보관하고 깨끗한 몸으로 나온다. 신기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다 의미 있는 것이었다. 많은 벌들이 엉킬 법도 한데, 전혀 다툼이 없다. 사람들과 어쩜 이리 다를까.
벌들의 색깔도 진하고 날개 소리도 건강한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 벌통의 벌들은 활기차 보였고,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옆에 있는 벌통을 보았다. 처음에 본 벌통보다 반 정도의 크기의 벌통이었다. 벌통이 작은 사이즈여서인지 들락날락하는 벌의 수도 적었다. 거기에 서식하는 벌들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는 벌들도 다리에 꽃가루를 묻혀 들어가는 것을 보질 못했다. 날아다니는 것도 힘이 없어 보이고 일하는 것도 별로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상하다. 벌들도 윤기가 없다.
두 개의 벌통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아버님과 어머님께 여쭤봤다.
"벌들이 신기하더라고요. 들어갈 때 꽃가루를 잔뜩 묻혀 들어가는 데, 질서가 느껴졌어요. 자기들 세계의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벌통의 벌들은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게 느껴지던데, 왜 그런 거예요?"
이 질문에 아버님이 말씀하신다.
"작은 벌통엔 여왕벌이 없어.
벌통에 여왕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렇게 벌들이 활기가 있고 없고 하더라고, 여왕이 하는 일이 많지는 않아도 그게 있느냐 아니냐에 엄청난 차이가 있나 보네. 그 벌통 없애야겠어.
자네가 자세히 관찰했네."
진짜 신기했다. 여왕벌이라는 리더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곳에 일원인 벌들이 살아가는 에너지가 완전히 달랐다. 맡겨진 일에 대해 지시할 리더가 있고 없고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신앙인으로의 나를 보게 된다. 나를 인도하는 리더는 과연 누구이며, 그 리더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일을 하는데 인도하는 자가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궤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될 수도 아니면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도 결정된다.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 미가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