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아이가 깨지 않길 바랐어

옥타브 타사르의 그림을 바라보며

by 레옹

어떤 밤은
음악보다 먼저,
한 장의 이미지가 나를 붙잡는다.
눈꺼풀을 올린 채로 멈춰버린 시간 앞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말을 잃는다.

“그림 한 점이, 내 시간을 멈춰 세웠어.”

처음엔 ‘그림’이었다.
그다음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온기’였다.

그림 속에서 온기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잠든 아기의 등 위로 이불처럼 내려앉고,
팔의 안쪽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다 끝내 손마디에서 멈춘다.
그 손마디는 더 이상 손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채 굳어진 형태처럼 보인다.


"차갑게 굳어버린 여인의 손마디."


나는 그 순간을 오래 바라본다.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오래 버틴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연말의 들뜬 불빛들 사이에서, 이 그림은 고요하다.
그래서 더 크게 울린다.
고요한 것들은 어떨 땐 무섭다.
무섭다는 말은, 도망치고 싶다는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내가 이 그림 앞에서 도망치지 못한 이유는 ‘죽음’ 때문이 아니라 ‘보호’ 때문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끝까지 아이를 감싸고 있다.
끝까지 버틴 모습이 남아 있다.
끝까지 사랑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마음을 품었다.

“그림 속 아이가 깨지 않길 바랐어.”

이 문장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누군가에겐 잔인한 겨울바람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진심은 달랐다.
깨지 않길 바랐다는 건,
아이의 삶이 멈추길 바랐다는 뜻이 아니다.
깨는 순간 아이가 단번에 알아버릴 세상이 너무 잔혹해서, 그 충격이 아이에게 닿지 않길 바랐다.
어쩌면 그건 ‘연민’이라는 단어의 가장 낯선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연민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흔들고,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힘이다.


"눈을 감은 채, 그 겨울을 떠올렸다.
연민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비난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해서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이 그림은 내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 서 있었니.
너는 무엇을 지나쳤니.
너는 어떤 온기를 지녔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작아지고, 더 움츠러든다.
그리고 그 웅크림의 끝에서, 우리만의 정서가 깔린 한자 하나가 고개를 든다.

“숨결이 떠나가고, 눈물도 말랐어.
굳어버린 입술에 내려앉은 한(恨).”

‘한(恨)’은 설명할수록 달아나는 말이다.
설명하기 전에 이미 가슴에 깔려 있는 바닥 같은 슬픔.
나는 그 슬픔의 바닥 위에서 이 그림을 본다.
나는 그 슬픔의 바닥 위에서 이 노래를 만든다.

이 글은 누군가의 연말을 어둡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연말이라는 이 계절이 정말로 ‘사람의 계절’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따뜻한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

“그녀가 남긴 건 마지막 온기.”

나는 이제, 문장 대신 리듬으로 애도하려 한다.



Image: Octave Tassaert (Ar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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