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by 레옹

인간불신 / 최규영



저녁이 내리면 빛은 제 몸을 가장 낮은

곳부터 접는다

방의 모서리는 날카로워지고 사각의

수조 속에선

물의 시간이 느리게 부패한다

수면은 잠든 동물의 배처럼 미동도

없고

나는 그 앞에 오래 앉아 핀 하나를

줍는다

머리카락에 꽂혀 있던,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여과기 모터가 웅웅거린다 네가 남긴

말은

낮은 주파수로 벽을 타고 흐른다 이젠

알 바 아니라고 너 하나로,

사람을 잃는 법을 배웠다 믿는다니

나는 다만 잠의 모든 자세를 잃었을 뿐

밤새 뒤척이는 몸 위로 수조의 물

그림자가 흔들릴 때

모든 무늬는 질문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손바닥을 유리에 대면 차가운 경련,

네가 켜고 간 어항의 조명이 내 척추를

녹여 투명한 관으로 만들었다

너는 이것을 선의라 부르겠지만

나는 매일 투명해지는 감각으로 엎드려

벽지에 스며드는 축축한 얼룩의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는다

해초처럼 엉킨 신경들이 이명으로만

자란다


증발한 물비린내가 텅 빈 공기 속에 떠

있다

마룻바닥에 붙은 은빛 비늘 한 점,

꺼져가는 수초 그림자가

누군가 두고 간 외투처럼 개켜진 어둠

속에서

물고기는 제 그림자를 뜯어 먹고 있다






투명해진 시 앞에

나는 독자가 아닌 목격자가 된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시인을 이해하기보다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을 본다.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

설명 없이 서 있는 나를.


내 마음이 시인의 문장에 비쳐버린 것일까.


최규영의 시는 전달을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그는 “이해해 달라”는 문장으로 독자를 붙잡지 않는다.

대신 이미 투명해진 상태를 숨기지 않았다.

가리고 싶어도 가릴 수 없는 감각, 그 한 겹도 남지 않은 내부를 그대로 놓아둔다.

그래서 읽는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된다.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처럼.


그의 시가 행간이 독특한 이유도 그래서일까.

그의 행간은 휴식이 아니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계단이 아닌, 발이 허공을 딛게 만드는 구멍에 가깝달까.

설명은 생략되고, 원인은 묻히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는 해석으로 몸을 숨길 틈이 없다.

나는 시의 의미를 잡기 전에, 시가 만든 공기 속에 먼저 갇힌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종종 불편하다.


시인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오래 두꺼운 옷을 입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말로 덮고, 논리로 정리하고, 농담으로 피해 가며,

내 안의 축축한 얼룩진 가장자리를 모른 척해왔기 때문이다.

최규영의 시는 그 모른 척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선의”조차 경련으로 바꿔버리고,

빛조차 따뜻함이 아닌 노출로 만든다.

나는 결국 거울 앞에 선다.

누구도 나를 벗기지 않았는데, 나는 그의 시 앞에 이미 벌거벗고 서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시를 읽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한 번쯤은 나 자신을 제대로 목격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부터 접히는 빛처럼,

내 마음의 가장 낮은 곳부터, 비밀이 접히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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