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마음이 먼저 기울어지는 순간
사람의 몸은 때때로 마음이 가는 쪽으로 먼저 향하곤 합니다.
그 사람을 향해 발끝이 향하고,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시간.
현루 작가님의 시 [짝사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런 조용한 마음의 결을 떠올렸습니다.
다가서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는 마음, 알아도 되지만 모르는 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글을 읽다가 마음이 기우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지요.
“알아도 돼요 알아채도 돼요
하지만 아는 척은 하지 말아 줘요
모르는 척해줘요”
이 부분을 읽어 내려갈 때 제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에 쓰인 대로 짝사랑이란 어쩌면 서툴러서가 아니라 너무 소중해서 천천히 다가가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문득 흥얼거리게 된 그 시의 결을 따라 나는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콜라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작가님의 필명은 玄淚(현루)로, ‘검을’ 玄과 ‘눈물’ 淚를 합쳐 "삶의 깊고 오묘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의 눈물(시선)")을 담았다고 말합니다. 한때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시간 속에서 사유하고 관조하며 인내하는 마음을 배웠고, 그 태도는 지금도 “서둘러 판단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작가님 삶의 중심에 가까워 하루의 대부분이 글과 연결되어 있고, 한 번 쓰기 시작하면 4–5시간 몰입할 만큼 한 문장을 끝까지 붙드는 힘이 있습니다. 몸의 불편함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는 일상 속에서도, 작가님은 2026년 1월 간암 진단 이후를 ‘회향하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의 짐을 덜고 주어진 하루를 평소처럼 담담히 건너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루 작가님의 문장은 과장보다 절제에 가깝고,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마음의 결을 조용히 포착하는 ‘말처럼 들리는 시’로 독자의 내면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레옹은 그 결을 따라가다 「짝사랑」의 한 구절에서 먼저 멜로디를 들었고, 시가 품고 있던 조심스러운 거리감과 따뜻함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노랫말을 다듬어 갔습니다. 글이 마음을 생각하게 하고 음악이 마음을 느끼게 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이번 콜라보가 여러분에게도 조용한 공명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마음이 어느 날 우리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 글과 노래가 오늘의 작은 인연이 되어 ‘오늘은 조금 더’ 가벼운 용기를 건네면 좋겠습니다.
현루 작가님의 시 [짝사랑] 원문은 아래 브런치 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kimgeon/621
작가 인터뷰
Q1. 작가님은 브런치북에서도 ‘인연’을 주제로 깊은 사유를 나누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인연’이란 무엇인가요?
불교에서는 인연을 ‘원인과 조건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씨앗만 있다고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햇빛과 물, 흙과 바람 같은 조건이 함께 모여야 꽃이 피듯이 사람의 만남 역시 여러 시간과 상황이 겹쳐질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게 되고, 스쳐 지나갈 인연은 붙잡으려 해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제가 브런치에서 ‘인연’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보니 결국 우리의 삶은 인연으로 시작해 인연으로 이어지고 인연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통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는 일 또한 저에게는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라고 느껴집니다.
Q2. 작가님은 평소 짝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살아오시면서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짝사랑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제가 느끼는 짝사랑은 혼자서 조용히 품는 마음의 '인연'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사랑의 기쁨도 크겠지만 때로는 기대와 상처도 함께 따르기 마련입니다.
짝사랑은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마음속에서 한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감정이기에 또 다른 결을 지닌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짝사랑의 장점이라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거리를 두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하는 따뜻한 감정 자체는 오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기에 때로는 더 순수하게 남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스쳐 지나간 짝사랑의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세월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특별한 이야기로 남기기보다는, 한때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해 조용히 머물렀던 시간으로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오래 기억되는, 마음속 작은 인연의 한 장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3. 제가 보내드린 가사를 읽으셨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가사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내 시를 노래로 참 잘 표현하셨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짝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장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담담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의 조용한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가사를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말은 걸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 사람에게 가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치 먼발치에서 조용히 바라보며 혼자 마음에 품고 있는 순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사를 읽는 동안 짝사랑이 가진 조용한 거리감과 따뜻한 그리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Q4.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글과 음악의 차이,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음악 역시 마음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글은 생각을 문장으로 풀어내며 천천히 마음에 스며드는 힘이 있습니다.
반면 음악은 몇 초의 멜로디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바로 흔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글은 마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언어라면, 음악은 마음을 느끼게 만드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점이라면 글이든 음악이든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도 휴대폰 벨소리를 레옹 작가님의 음악으로 설정해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콜라보한 노래의 음원 역시 제 벨소리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글과 음악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소중한 표현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Q5. 작가님께서는 한때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글쓰기나 삶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느끼시는지요.
수행을 하는 동안 저는 무엇보다 사유하고 관조하며 통찰하고 인내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감정을 서둘러 판단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봅니다.
글쓰기는 결국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태도 역시 수행의 시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지나치게 붙잡기보다는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6. 건강 문제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올해 1월 간암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간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런 소식을 들으면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저는 그 상황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지금 저는 회향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살아오며 마음속에 쌓였던 것들을 돌아보고, 필요 없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물건들도 조금씩 정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삶을 다시 한번 차분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연연하며 지내지는 않습니다. 가능한 한 평상시처럼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주어진 시간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제 삶의 방식입니다.
삶이 유한한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더더욱 지금 주어진 하루를 조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7. 작가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예전처럼 오래 글을 쓰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글을 남기고 갈 것인지, 또 어떤 이야기가 세상에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창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서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때, 저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제게 글쓰기는 세상과 이어지는 길이자 삶의 활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8. 오늘의 콜라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면 글쓰기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흩어져 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글을 통해 차분히 자리 잡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진솔하고 울림 있는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지기 위해 상업적인 글만을 쫓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닿을 수 있는 진심 어린 글을 남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글이 결국 오래 남고,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Q9.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건강한 짝사랑’, ‘올바른 짝사랑’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짝사랑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집착하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조용히 간직할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짝사랑은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가까이 가지 못하더라도 멀리서 응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짝사랑이 가진 가장 순수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콜라보 곡 소개
짝사랑 작시 / 현루
요즘 자꾸 발끝이
그대 쪽으로 기울어요
다가서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한가운데서
조용히, 천천히 자라고 있어요
그댄 아직 모르길 바라요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걸
스쳐 지나칠 때마다
숨을 한 번 더 고르는 걸
말하고 싶은 문장들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아직은 아니라는 듯
다시 내려앉아요
알아도 돼요, 알아채도 돼요
하지만 아는 척은 하지 말아 줘요
모르는 척해줘요
내가 다가서는 이 마음이
아직은 혼자만의 비밀이길 바라니까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그대 곁에 머물고 싶어요
그대가 지나칠 때
고개 숙이지 않고
한 번쯤 제대로 마주 볼까 해요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서툴러서가 아니라 너무 소중해서
이 처음의 떨림을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조금씩, 한 걸음씩
그대에게 향하고 있어요
알아도 돼요, 알아채도 돼요
하지만 아는 척은 하지 말아 줘요
모르는 척해줘요
내 가슴이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조금 더
용기가 생겨요
https://youtu.be/rfeWgadX4co?si=6_JN2B78R2IQL0OP
에필로그
어떤 인연은 글로 시작해 노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마음, 조용히 간직하는 사랑.
현루 작가님은 작년 겨울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응급실을 다녀오신 뒤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날 저는 「쓰는 이유」라는 노랫말을 보내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마음이 조금 급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그 시도 좋아해 주셨지만 ‘인연’이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버전의 ‘인연’을 만들었지만 사실 제 마음에 닿는 곡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작가님의 시 [짝사랑]을 읽었을 때 이 시는 마치 노래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처럼 제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짝사랑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감정이고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한 편의 답장이기도 합니다.
글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다시 이야기가 되는 시간.
레옹의 콜라보 [노래를 선물합니다]는 앞으로도 천천히 이어집니다.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 브런치북을 끝까지 완결해 보겠습니다.
#레옹의콜라보 #노래를선물합니다 #현루작가 #짝사랑 #인연 #글이노래가될때 #브런치콜라보 #창작의인연 #사랑의감정 #브런치작가 #시와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