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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의 콜라보 ㅡ 해이 작가님 편

고시원 연가(김치 한 조각, 자판기 커피 한 잔)

by 레옹



프롤로그 — 글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다시 글이 되는 순간


사람이 버티며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루를 다독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해이 작가님의 브런치북 [고시원 연가] 속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비좁은 복도 끝에서, 좁은 책상 위에 손바닥만 한 희망을 올려놓고 오늘도 살아내는 사람들.

김 차장, 수연, 금고 아가씨, 델마, 방글라데시 청년, 가출 10대 소녀…

그들은 서로 다르지만, 삶의 온도는 닮아 있다.


이 노래는 그중 수연의 시선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다.

써지지 않는 글, 힘겹게 버티는 하루, 그럼에도 다시 펜을 드는 사람.

그녀가 쓰지 못한 문장을 대신 써 주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적어 내려간 노래 —

그것이 바로 오늘의 콜라보 송, [고시원 연가(김치 한 조각, 자판기 커피 한 잔)]이다.




원문 속 이야기 – 《고시원 연가》 中 수연의 겨울


서울 신림9동의 오래된 골목,
‘서울명문고시원’ 2층 끝방 204호에 한 여자가 산다.
그녀의 이름은 수연.
낮에는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 밤에는 편의점 —
그리고 그 사이사이, 까맣게 식은 커피와 하얀 원고지가 그녀의 하루를 지탱한다.

곰팡이 쓴 귤, 자판기 커피, 끊어진 글자들.
모든 사물이 가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쓴다.
아니, 쓰려 애쓴다.

병실의 아버지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 온기가 남아 있다.
“니... 글 쓴다 했지? 꼭 써라. 글은.. 글은... 니 손가락에서 안 나온다. 가슴에서 나온다. 너는 꼭...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거라.”
그 말은 수연의 밤을 버티게 하는 마지막 불씨였다.


겨울은 길었고, 고시원 복도는 늘 좁고 어두웠다.
누군가는 라면을 끓이고, 누군가는 세탁기를 돌린다.
그 소음들 사이로, 쓰이지 못한 문장들이 천천히 부패해 간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이어진다.
곰팡이 쓴 귤도, 새카맣게 식어버린 커피도, 그녀의 내일을 향해 천천히 발효되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눈빛을 떠올리며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원고지 위에 몇 마디의 단어를 적었다.

'귤, 자판기 커피, 200원.
그리고, 아버지.'


그 문장은 마치 수연의 내면에 꿈틀대는 감정의 떨림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여백을 남긴 시,
끝내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기록.

[고시원 연가] 속 수연의 이야기는 세상 가장 좁은 방 안에서 피어난 가장 넓은 생의 서사다.


https://brunch.co.kr/@haei-story/69



작가 소개 – 해이(HAEY)

해이 작가님은 일상의 틈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온기를 포착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녀의 글에는 늘 결핍을 마주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결핍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연민과 이해의 시작점이다.

브런치북 연재작 [고시원 연가]는
그녀가 오래도록 품어온 주제 "하류 인생의 품격"을 섬세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누군가는 실패의 공간이라 부를 고시원에서, 그녀는 오히려 사람들의 온기와 나눔의 기록을 발견한다.
서로의 마지막 식재료를 내놓던 이들의 식탁, 곰팡이 핀 귤 하나에도 스며 있는 작은 생의 끈기.
그 모든 장면이 그녀의 문장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해이 작가님의 문장은 때론 담담하지만, 그 담담함 안에는 불타는 자비가 숨어 있다.
그녀는 화려한 언어로 울리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숨결로 사람의 마음을 데운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읽을 때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다.




해이 작가님과의 Q&A


Q. 해이 작가님의 글에는 늘 ‘풀림’과 ‘기쁨’의 결이 스며 있습니다.
‘해이(解怡)’라는 필명에 담긴 뜻처럼, 묶인 마음을 풀어주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상태로의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누군가가 나에게 건넸던 말, 지난 시간에서의 기억, 후회 등과 같은 해묵은 것들이 고여서 더 깊게 파고들어 제 안에서 부패해 갔던 것 같아요.

가끔 그런 것들을 해소하고, 소통할 곳이 필요했었어요. 살다 보니 친구들과는 멀어지게 되고, "나"라는 사람은 소멸되다시피 했던 상태였죠. 그저 제가 받은 "역할"로의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달까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 메모장이나 내게 보낸 메일함으로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적어놓기 시작했어요. 그때마다 "대나무숲"처럼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마음을 푸는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의 매듭도 함께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 글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해이(解怡)'로 향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고시원 연가]는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개인적인 동기나, 마음속에 남은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고시원연가"는 제가 20대 초반이었던 시절, 고시원에서 얼마간을 살아가며 보고, 들었던 내용들을 첨가해서 쓴 현실 기반 소설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입니다.
그 이야기가 제게 특별한 이유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서로에게 가장 귀한 것을 건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고시원에서 그런 장면들을 목격했습니다.
하루 한 끼를 챙겨 먹는 일조차 버거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마지막 계란을 기꺼이 나눠주는 행위.
그 순간은 비참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엄이 가장 뜨겁게 빛나는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가장 마음속에 남은 장면을 꼽자면 김 차장과 금고 아가씨가 옥상에서 저녁,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서로의 하루를 위로하던 장면,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라흐만을 위해 김치죽을 끓여주는 장면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마지막 한 알의 계란을 쓰는 마음.
저는 그 순간을 희망이나 희생이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사람냄새라는 말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결국 "고시원 연가"는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이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을지언정, 결코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내는 법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Q.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버티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김 차장, 금고 아가씨, 수연, 델마, 그리고 방글라데시 청년까지 —
작가님께서 그들의 공통된 ‘온기’로 느낀 것은 무엇이었나요?

A. 이 인물들이 고시원으로 흘러들어온 이유는 각자 달라요. 버텨야 하는 이유도, 버티게 하는 이유도 다르죠. 부서진다는 사실만 같을 뿐, 각자 다르게 살아남죠.
하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밥을 나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몫의 삶을 버티는 것도 버거울 텐데,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온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정의합니다. 끝없는 고통의 나락에 떨어져 있음에도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으로 숨을 쉬죠. 그렇게 얻어진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서로의 방식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그 연대는 세상 그 무엇보다 진한 온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온기의 연대를 믿습니다.



Q. 글을 쓰는 일과 살아가는 일이 겹쳐질 때가 많습니다.
혹시 해이 작가님께 ‘글을 써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언제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A. 저에게 글이라는 것은 "살아남는 방법"이었어요.
어떤 이에게는 돈이, 또 어떤 이는 도움의 손길이,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기도가 필요하듯이 저에겐 글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믿을 곳이 없었어요. 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좀 바라봐 달라는 손을 내밀만한 곳이 없었어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인생 속에서 맞이한 "글쓰기"라는 일은 "살기 위한 산소호흡기"와 다름없었습니다.
저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것들을 글 속에 녹여낸 후에야 비로소 견딜 수가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 글이 조금 밝기도, 어둡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진심이었습니다.
모든 문장에 제가 녹아있으니까요.



Q. 이번 콜라보 노래 [고시원 연가(김치 한 조각, 자판기 커피 한 잔)]를 들으셨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나 문장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A. "겨울은 길었고, 복도는 좁고 어두웠지"
첫 소절에서부터 이미 눈물이 났어요.
그 문장은 마치 수연의 방 문을 다시 열어준 열쇠 같았어요.
식은 커피와 곰팡이 핀 귤,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온기.
그 장면들이 제 마음 안에서 재생됐어요.
이 노래는 수연이 완성하지 못한 글을 대신 써준 것 같았어요.



Q. 마지막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해이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한 줄의 문장이 있다면요?


A. "쓰러져도 쓰면 된다."
버려져도, 잊혀도, 글을 쓰는 한 아직 살아있다.라고 믿어요.
우리의 하루가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기록합시다.





레옹 작가님,
수연의 완성되지 못한 글을 노래로 건져 올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로만 존재하던 그녀의 이야기가 멜로디를 만나며
저 역시 오랫동안 조용히 묻어두었던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첫 소절이 흘러나올 때 예전의 기억들과 수연이 앞으로 마주해야 할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이 노래는 단순한 헌정곡이 아니라,
'기록이 다른 예술을 만나 다시 살아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귀한 순간에 저를 인터뷰이로 초대해 주신 것도
제가 작가로서 걸어가는 길 위에 깊고 세밀한 의미로 새겨졌습니다.
이 특별한 연결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에필로그 – “쓰는 자의 운명”

깊어가는 가을의 한가운데, 한 줄의 문장이 나를 향해 외쳤다.

“쓰러져도 쓰면 된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버려져도 좋고, 잊혀도 괜찮다고 —
그저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고.

나는 [고시원 연가] 속 수연에게서 그 문장의 근원을 보았다.
말을 잃은 자의 입술, 그럼에도 가슴으로 세상을 붙잡던 여자.
그녀는 글을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사람,
나는 그 마음을 안다.
그래서 이 노래는 감히,

그녀의 문장을 대신 써 내려간 내 작은 기도였다.



https://youtu.be/2WXN4G7VeQI?si=gwi5sPW9dJfGe5UB

노래는 유튜브 [레옹뮤직]에 작가님의 브런치북 링크와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https://suno.com/s/035r3rrK7x5yP3Z6

유튜브 접속이 안되면 이곳을 클릭하시면 원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0^



고시원 연가(김치 한 조각, 자판기 커피 한 잔) 레옹 작사




겨울은 길었고, 복도는 좁고 어두웠지

까맣게 식은 커피가 유일한 위로였어

휘청이는 발걸음 뒤에 따라붙는

날 밀어낸 그 슬픈 존재들


아버지, 기억을 잃어가도

내 안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글을 써라, 네 손끝에서 네 삶은 다시 살아날 거야”


김치 한 조각, 자판기 커피 한 잔

작은 것들이 내 하루를 붙잡는다

무너져도, 흘러가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살아 있네

아버지의 눈빛 속에 남은 작은 꿈 하나,

내 가슴을 두드린다


검은 봉지 속 곰팡이 쓴 귤 몇 개

스미는 건, 희망 없는 원망

슬픔인지 좌절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은 나를 데리고 걷는다


쓰러져도 쓰면 된다

버려져도 기록된다

아버지의 말, 내 가슴에 남아

오늘도 펜을 잡는다


곯아버린 귤과 식은 커피처럼

내 하루는 슬픈 노래로 흐르지

겨울은 길고, 펜이 갈 곳을 잃어도

내 글자들이 내일을 불러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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