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의 콜라보 - 라이테 작가님 편

박하향 봄날

by 레옹


프롤로그


어떤 글은 읽고 나면 낯선 단어나 문장, 그리고 그 글 속 풍경에 한참을 머물곤 한다.

라이테 작가님의 글이 그랬다.

그녀의 매거진 [아버지의 뜰에 머무는 것들] 중 "쓸쓸하고도 충만한 것들"을 읽던 날이었다.

텃밭으로 남은 집터, 경옥언니와 할머니의 시간이 머물던 자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봄동 배추를 뽑던 하루.

그 장면 속에는 어린 시절의 박하사탕이 있었고, 지금의 부녀 사이를 스치는 조용한 봄바람이 그 기억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당연하듯 한 편의 영상이 떠올랐다.

흑백으로 시작해, 서서히 푸릇푸릇한 배경으로 번지고, 그 속에서 유난히 하얗고 뽀얀 박하사탕과 경옥 언니의 빨간 판타롱 바지가 선명하게 살아났다.

노루 꼬리만 한 봄방학 끝, 코가 뻥 뚫리고 눈알이 매캐해지는 그 기억처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박하향의 봄날.

우악스러운 언니의 손이 번개처럼 주머니를 스치고 지나가고, 막 잠에서 깬 듯한 순딩 순딩한 아이의 얼굴과, 영문도 모른 채 짖어대는 하얀 댕댕이 ‘메리’까지.

모든 장면이 파스텔빛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이 노래는 그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라이테 작가 소개


필명 ‘라이테’는 [와 우리들의 야기 테두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할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애청자 모임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라디오가 주는 아날로그감성, 은근하고 다정한 이웃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하네요. 또 나무의 나이테처럼 고단하고 추운 계절을 건너온 시간을 글 흔적으로 남기고 싶었다고요. 이 세 가지 의미를 필명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섬세한 문장과 따뜻한 감수성으로 일상과 추억을 그려내며,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 담긴 의미를 탐구합니다. 자기 성찰과 공동체, 가족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독자와 진정성 있는 소통을 강조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주요 작품으로 매거진 [아버지의 뜰에 머무는 것들]은 사라져 가는 시골의 풍경과 가족의 시간을 기록하며, 이번 콜라보 노래의 시작점이 된 글이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cherryn99/246


에세이 연재 [당신도 아는 그 사람, 그 풍경]에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감정들을 잔잔하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며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또한 [우산 없이 비 오는 날들의 산보]에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상처가 어떻게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이 어떻게 ‘삶의 형태’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설 [이름을 갖지 못한 여자]에서는 이름조차 온전히 부여받지 못한 한 존재의 삶을 통해 폭력과 상처 속에서도 살아내야 했던 시간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그녀의 글은 특별한 사건보다 지나쳐온 하루의 장면 속에 머무르지만, 그 장면들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은 읽는 이를 위로하기보다, 조용히 곁에 앉아 함께 시간을 버텨주는 글쓴이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글쓰기를 ‘공동우물’에 비유합니다.

자신이 길어 올린 물로 스스로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그 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일.

누군가는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물로 목을 축이며,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간.

그래서 그녀는 글을 쓴다고 합니다.

누군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서.




작가 인터뷰



1. 브런치를 글쓰기 공간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2018년 즈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브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글쓰기가 저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2020년 초, 다녕 님과 뮌헨의 마리 님의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독자로 머물게 되었고, 그렇게 3년 정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로서의 시간이 글쓰기로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합니다. 남편의 말기암 투병이 시작되었던 시기, 브런치의 글들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후 암투병 환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라요 작가님의 글을 애독하며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댓글들이 쌓여 작가 신청을 권유받았고, 몇 달의 망설임 끝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브런치 글 발행은 202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글을 쓰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브런치에서 본격적으로 독자로 활동한 것은 2020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글쓰기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고, 그저 읽는 사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읽던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출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밝히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게 중요한 가치들은 출간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소하지만 삼삼오오 모여 소곤소곤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

일상의 어떤 장면이라도 제 마음을 스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제 안에 담아두기보다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4. 일상의 장면들이 참 따뜻하게 담겨 있습니다.

평범한 하루가 문장으로 남고 싶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특별한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마음이 반응하는 순간, 그 장면이 제 안에 오래 머물 것 같을 때 자연스럽게 글로 남기게 됩니다.


5. 작가님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순간에 ‘이 장면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여행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문장보다는 제가 본 모든 순간을 가능한 한 다 담아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여행 글의 방식입니다.


6. 댓글 창에서의 활발한 소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께 브런치 댓글창은 어떤 공간인가요?


제 생활은 단조롭습니다.

직장과 교회, 그리고 집을 오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습니다.

브런치는 그런 제게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저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글만으로 이어지는 관계보다 대화를 통해 이어지는 관계가 더 오래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만큼이나 소통을 소중히 여깁니다.


7. 작가님께 가장 의미 있는 글이나 매거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뜰에 머무는 것들]입니다.

어린 시절의 시골 이야기와 지금의 시골 풍경,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아버지께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사람은 사라지더라도 이야기는 남기를 바라며.


8. 매거진 [아버지의 뜰에 머무는 것들]을 통해 앞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나 장면이 있으실까요?


그 시절 농촌에서 자랐던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 그리고 점차 사라져 가는 토속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 사라지더라도, 그 말들과 풍경만큼은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9. 이번 콜라보 글과 노래를 함께 접하게 될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으실까요?


제가 매거진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정서가 이번 콜라보 작품 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매거진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글이지만, 이번에 함께한 노래는 조금 더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풀어졌습니다. 그래서 글과는 또 다른 결로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마음이 유니크한 방식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색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가볍고 즐겁게 감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콜라보 송



박하향 봄날 작사 / 레옹




노루 꼬리만 한 봄방학 끝

시내 다녀오는 경옥 언니

뽀얀 손가락이 내 손등을 뒤집어

하얀 사탕 네 알 올려 주었지


코가 뻥 뚫리고 눈알이 매캐해지는

하얀 박하사탕 네 알

판타롱 바지 경옥 언니

“언니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알았지?”


세 알은 주머니 속 몰래 숨겨 두고

한 알은 혀끝 위에 봄볕처럼 올려놓고

그날 오후 나는 조금 부자였지

잠시, 아주 잠시 동안 말이지


박하사탕 네 알

내가 가진 작은 우주

주머니 속에서

봄바람이 불었지


근데 우악스런 언니 손이

번개처럼 왔다 가니

내 작은 우주가

뒤집혔어, 히잉...


두 알을 쥐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언니

눈 비비며 일어나는 순둥이 막내 동생

양심이란 녀석이 내 마음을 찌르고

사탕 한 알의 운명이 내 손 위에서 흔들렸지


박하사탕 네 알

우주가 내 거였는데

언니가 두 알

순둥이 동생이 한 알


혀끝에 남은 단물

흘리지 않으려 꿀꺽

동생 입에서

박하 향기 봄바람


메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짖었고

박하 냄새 봄바람만 맡았겠지


긴 머리 찰랑이던 경옥 언니도

저고리에 일바지 입던 할머니도

다 떠난 집터에서


박하사탕 두 알

아버지 한 알

나 한 알

그 사이로

봄바람

천천히

휘돌아 나가네




※ 노래 속 ‘경옥 언니’는 옆집에 살던, 저고리에 일바지를 입으시던 할머니의 막내딸입니다.

※ 눈을 비비며 일어난 막내 동생과 번개같이 달아나던 언니는 라이테 작가님의 실제 남매입니다.



https://youtu.be/zFgQVu52Jhc?si=CrUVCYWNr1Wch_Oj







에필로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개 커다란 사건보다 사소한 감각으로 먼저 돌아옵니다.

혀끝에 오래 남는 박하의 맛,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리던 사탕의 촉감, 봄볕 아래 잠깐 내 것이었던 작은 우주.

라이테 작가님의 글이 품고 있던 그 시간을 노래라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건너 보았습니다.


사라져 가는 풍경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이야기가 사람보다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만의 ‘박하향 봄날’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노래가 그 따뜻한 기억의 가장자리에 작은 바람 한 줄기처럼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유년을 잠시 함께 건너 다시, 각자의 봄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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