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단절에 대한 고민과 방황기
초기 유산 경험이 있던 나는, 늘 유산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거의 14주까지 매주 병원을 방문할 정도였으니까. 그 때마다 아이는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늘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손 발을 귀엽게 꼬물거리며 날 안심시켜주었다.
그리고 이 쯤 진행 한 1차, 2차 기형아 검사에서 정상 소견을 받은 후에는 ‘드디어 큰 고비는 넘겼다’ 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의 안위에 대한 반복적인 안정감도 학습이 되었는지, 어느덧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임신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비 온 후 구름 걷히듯 머릿속에서 사라져갈 때 즈음, 또 다른 새로운 먹구름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드리우기 시작했다.
바로 내 미래였다.
참고로 나는 2025년 2월 세 번째 직장 퇴사와 동시에 임신을 한 상태였다. 임출육에 대한 계획이 있음에도, 멀쩡히 잘 다니던 건실한 회사를 퇴사한 이유는 ‘조직생활이 맞지 않는다’ 라는 이유였다. 다양한 산업군의 대기업, 스타트업, 외국계 회사를 고루 다녀보며, 나는 회사에 속해 있는 것 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프리랜서로의 경험은 없었지만, 스스로가 정해 놓은 목표와 페이스에 맞추어 성과를 내는 것에서 더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에서 비롯 된 판단이었다.
출산 전까지의 약 10개월을 커리어 재정비에 대한 기회로 여기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 적당히 즐기며 할 수 있는 것을 주르륵 작성해보니, 그 공통 분모는 '남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 이 남아있었다. 그럼 가르치는 대상은? 지루하고 딱딱한 입시 영어보다는, 조금 더 말랑하고 캐쥬얼한 영어 회화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성인 대상의 회화 어학원 몇 군데의 면접을 본 후, 운이 좋게 약 2주만에 강남 소재의 한 성인 영어 회화학원에 파트타임 강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곳에서 일상 회화와 영어 공인인증시험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내 인생에서의 첫 수업을 끝낸 후,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엄마, 나 왠지 스타 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며 강남역 한 가운데에서 엄마에게 큰 소리로 통화를 하던 때가 기억난다.
수강생의 니즈에 맞는 수업 콘텐츠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것, 마치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폭풍 칭찬을 해주는 것 등 꽤나 활력이 넘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수업의 질에 대해 수강생과 학원 측의 칭찬과 인정은 '이것이 나의 사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다시 회사원으로서의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종류의 과제를 미션 클리어하듯 해치워내는 것이 더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로지 스스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외로운 길이었다. 팀/부서와의 적절한 협동에서 느꼈던 적당한 동기부여와 성취감이 그리워졌다. ✔️ 교육 업계의 초보자로서, 수입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별도 수업 교재가 없고 강사가 직접 콘텐츠를 자율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는데, 나의 시급에는 수업 준비 시간에 대한 가치는 매겨지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했었다.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긴 했으나, 때에 따라 50분 수업을 위해 수업 준비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 수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원이 아닌 숨고나 김과외 같은 플랫폼에 셀프 브랜딩을 하여 몸값을 올리는 방법도 있으나, 화려한 경력의 고수들 사이에서 나를 알릴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많은 인풋을 들여서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열정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영어 학원 강사로서의 6개월은 내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그다지 크지 않고, 회사 밖은 외롭다는 것을 충분히느낄 수 있는 기간이었다. 경험해보았기에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시간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추후 사무직으로 다시 근무를 할 것을 고려한다면 이 기간은 증발 되어버린 시간이 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지막 회사에서의 삶이 별로였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볼걸 그랬나?’, '내가 너무 나약한가?' 라는 생각이 가슴을 한 점 한 점 채우다보니, 어느덧 나의 선택에 대한 막심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출산 후 아이를 최소 2년간은 가정보육을 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내 현실은 경력 단절 최소 3년의, 아이가 있는, 주니어급 경력을 지닌 여성인 것이다.
내가 항상 자부심을 느껴오던 명문 대학교 졸업장, 우수한 영어실력, 다채로운 조직에서의 경험은 이제 나만의 훈장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르바이트 구직 앱을 켜 ‘마케팅 사무보조’를 검색해보는 날들이 시작됐다. 출산까지는 약 4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