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일곱. 그림일기를 쓰다.
그림일기를 쓰게 된 두 가지 이유
서른일곱.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나이를 잘 세질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나이를 물어보는 질문을 받으면 선뜻 답이 떠오르질 않곤 한다. 그럴 때마다 '84년생이에요'라는 답을 주로 한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보다 연배가 제법 위인 직장인들을 만나면 나이보다 출생 연도나 띠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었는데 어느덧 나도 그들의 나이가 되고 있는 듯싶다. 변명을 하자면 아직 서른 중반의 소위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나이를 세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서른일곱의 어른인 나는 요즘 어린 시절처럼 그림일기를 종종 쓰고 있다. 그림일기를 쓰게 된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나를 성장시키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넘게 매일 아침이 되면 회사에 출근을 하고 기업이라고 하는 커다란 조직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퇴근을 하면 아빠와 남편이라는 역할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가정에서 역할과 책임이 늘어갈수록 그 시간을 가족과 타인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다.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 그리는 활동을 통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내가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2016년부터 그리고 있는 히로아빠의 육아일기 시리즈
두 번째 이유는 소중한 추억을 기록해두고 싶어서다. 4년 전 첫째가 태어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을 아니기에 서툰 솜씨로 태블릿에 그려오기 시작한 웹툰 형식의 육아일기는 아이와의 함께 보낸 지난 시간들과 당시 아빠로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 있다. 지난해 여름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웹툰처럼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조금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 장의 그림과 글을 적으며 아이들과 보낸 추억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일기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림을 그린 소재를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나 폰에 저장되어 있던 아이들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마음속과 머릿속에 다시 한번 깊게 기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림을 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리기라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스스로 조금씩 성장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더불어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한 추억을 그리며 하루 중 짧지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을 소중히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서른일곱에 다시 그림일기를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