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여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Come to meet yourself
길가에 눕다시피 드러난 팻말을 유심히 보는 다희가 재한에게 묻는다. "이모는 이모 자신을 만났어요?"
아마 이 영화를 보며 각인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왜 걷는지도 모른 채 걸어도 자신도 모르게 어느 찰나에 만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얼마나 경이로울지 감히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여 나 역시 조용히 묵상에 빠져 침잠하는 마음을 보게 된다. 언제고 갈 수는 있을까. 걷지는 못해도 휠체어에 의지해서라도.
50 중반이 넘어선 시각장애인 여성과 17살 소녀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담은 다큐멘터리. "와 멋지다"와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왜?"라는 두 개의 감탄이 동시에 터졌다. 나와 아내의 감탄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일까. 마음은 있지만 선뜻 엄두를 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300km가 넘는 순례길을 시시각각 장애를 맞닥뜨려야 사람으로서 결행한다는 자체가 너무 멋지지 않은가. 어쩌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걷는다는 행위에 본다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얹혀 뭔가 완벽해지는 것일까? 보이지도 않는데 올레길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은 어쩌면 걷는 일에서 보는 일을 빼고는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린 보는 것만 믿으니까. 하지만 보이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것들, 모든 걸 갖춘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녀다.
더럽고 거지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감정을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순례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택하는 순간부터 장애를 가진 자신이 좀 더 의미를 부여했으리라 짐작한다. 하여 낯선 도시 어느 순간 장애로 인해 차별이나 소외된다는 느낌으로 울분이 북받쳐 오르는 일은, 대한민국이라는 익숙한 곳에서 지긋지긋하게 경험된 감정이 이입되어 터졌을지도 모른다. 기실 그 순례길엔 이미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없었을지 모른다.
다희가 말한 화가 난 감정은 그냥 감정일 뿐이고 본인의 상태라는 말은 거기에 굳이 장애 때문이라는 더 얹어야 할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속 깊은 위로였을거다. 길은 그냥 길일 뿐이고 좋은 길이나 나쁜 길이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열일곱 다희의 말에 쉰 하나의 나는 고개를 주억대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잊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으나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 두 순례자의 모습은 조금 놀라웠다. 시각장애인에게 팔을 내주기는커녕 한 치 앞도 못 보는 사람이 한 치 앞도 모르는 길을 혼자 걷게 한다는 일이 위태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찌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재한에게도 이 순례길은 자신을 찾는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지 않은가. 팍팍한 현실은 각자도생을 요구하지만 사실은 세상은 혼자 살기엔 너무 많은 만남이 있고 그 안에서 고독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다희의 응원은 결국 간신히 참던 감정을 터트려 버렸다.
때로 우리는 타인의 파이팅을 응원해야 할 때도 있다.
왜 우리 장애인은 스스로 강해져야 할까. 편견을 증명해야 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멈춰 선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소수자의 권리나 목소리는 보다 쉽게 묻히고 사그라드는 세상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씁쓸함이 적지 않다. 순례자들끼리 암묵적으로 지켜져 오는 일들을 장애라는 장벽으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이 배려나 소외됐다고 느끼는 그녀의 감정들을 통해 공평이나 형평에 관한 것들을 곱씹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일상에서 겪는 서러움과 힘겨움에 스스로를 다그치는 재한을 보면서 그녀의 인생을 생각하게 돼서 먹먹해졌다.
가뜩이나 약자가 낯선 곳에서 더 약자로서 침잠하는 자기 자신을 느껴야 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변하는 자신의 무력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안 되지만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재한을 보는 것은 휠체어에 앉아 계단이나 턱에 막혀 옴짝달싹 못해 갖은 불평불만에 쏟아내기만 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기도 한다.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서 행복한 플라맹고를 추는 그녀를 보며 장애는 할 수 없는 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