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어떨까? 영화 <나는 보리>는 이렇게 청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농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농인 가족 틈에서 청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같지만 다른 이야기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너무 예쁘게 사는 보리 가족을 통해 '다름'에 대한 인식을 정의한다. 그래서 강렬하다.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코다(CODA)라 한다. 보리가 그렇다. 보리는 화목하기 그지없는 조용한 가족 사이에서 늘 알 수 없는 소외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사당 앞에서 소원을 비는 장면이 내심 보리가 가족들이 들리게 해 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자신이 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면 어쩌나 싶어 먹먹했다.
영화는 유독 아이들이 비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보라 친구 은정(황유림)이 그랬고 동생 정우(이린하)가 이빨을 던져 놓고 손을 모은다. 뭘 빌었을까 궁금했다.
들려도 안 들려도 넌 보리야!
다름이 다름으로 존재하지 않고 같음으로 되려 할 때, 그때 우린 역설적이게도 장애를 맞닥뜨리는 게 아닐까. "들려도 안 들려도 우린 똑같아"라는 보리 아빠의 따뜻한 표정과 손짓은 이미 알고 있던 것임에도 새삼 크게 울림을 주면서도 감독은 다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해 직면하게 한다.
소리를 잃고 싶어 소원을 빌던 보리는 효험 없자 청력을 잃었다는 해녀 할머니의 말에 곧장 바다로 뛰어든다. 갖가지 검사에도 소리를 잃은 척하면서 가족과 같아진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된다. 친절하기만 하던 이웃들은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나 '벙어리'라며 비하를 스스럼없이 하고 심지어 바가지까지 씌우는 모습들을 알게 되고, 친구들은 어차피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사도 하지 않는다. 즐거웠던 수업 시간은 정우에겐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이고 능력보다는 지시 수행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차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만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 가족은 행복해야 하고 대부분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것. 소리건 손이건 표정이건 마음을 전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에 끝까지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감독의 긍정적인 시선이 다소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차별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고발하는 식의 전개가 아닌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었다. 이들의 눈 맞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건 보리 가족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감독이 농인 가족이라는 특수성을 보여주려 했을지 모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넘치는 가족에게서 소리를 뺏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이 얼마나 감정 표현이 풍부한지 얼마나 잘 웃으며 그럴 때마다 우리처럼 끅끅 대며 웃는지 모른다. 풍부한 표정과 빠른 수어와 동반되는 음성, 그들 사이에 있으면 시끄러울 정도다. 이런 풍부한 소리가 음소거된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