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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Jul 11. 2024

[에세이] 태어나는 말들

| 어머니를 넘어선 여성 해방 일지

콕 집어 낼 순 없지만 뭔가 티라미수같이 촉촉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도 담긴 제목처럼 느껴졌다. 모든 태어나는 것들의 시작은 타의적이고 세상을 모르니까. 상실에 대한 기억 혹은 기록일 거라는 얕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결이 다른 다양한 분야의 책을 13년간 출판, 편집한 조소연 작가가 어머니를 발견하고 기억하는 책이다. 브런치북 대상이 원작이다.


13쪽, 수치심과 자살


시작부터 너무 강렬해서 움찔했다. 어쩌면 시대에 맞는 수치심의 올바른 정의이기도 해서 그가 말한 상징 역시 공감한다.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고 나락처럼 빠져들어가 그를, 어쩌면 그의 어머니를 마주하는 듯하다. 숨이 차오르지만 무언가 날숨을 가로막는다. 그저 들숨이 끝인 것처럼 숨을 참고 책장을 넘기고, 무거운 공기를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기분이다.


당혹스러움을 마주한다. 그가 그의 어머니의 외도를 고통을 감내하면서 까지 세상에 드러내야만 했었다는 그의 무게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까지 수모와 낙인을 염려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고인이 끝내 감추고자 했던 '수치'를 지켜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간통, 불륜, 외도라는 단어가 아닌 인권, 존엄 같은 단어 때문에라도 그랬어야 하지 않았을까. 입술 끝에 씁쓸함이 좀 묻어났다.


37쪽, 내 딸이여, 시간을 초월하는 운명이 덮쳤소


어쨌거나 이 폭풍 같은 이야기는 마치 덮쳐오는 해일이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을 직감하면서도 주저하다 휩쓸리는 것처럼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버티며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아버지의 무력감, 오빠의 거리 두기, 거기에 동생의 미미한 관심의 존재인 어머니와는 다른 이질적인 삶에서 허우적대는 그의 격정사는 읽는 내내 감정을 뒤흔들면서 공감과 측은 사이 어디께쯤 존재하게 한다. 내 어머니가 당신의 '못 배운 한'을 풀어내듯 아들들을 웅변, 주산, 입시학원을 비롯 과외까지 시키려 고단한 삶을 견뎌낸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베껴낸 듯했다.


내 어머니가 폭음이나 정신질환에 침잠하지 않은 사실만 빼면 자식에게 집착하거나 썸 타던 동네 국어 선생님이 아닌 외할아버지의 강압적 손에 이끌려 나간 선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아버지와 결혼을 해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굴곡진 연애사나 40초반부터 생업에서 손을 놓고 한량의 삶을 선택한 무능한 남편까지 둔 사실은 그의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건 얼마간의 고통이 있다.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어머니는 무엇을 꿈꿨고 무엇을 욕망했을지 많이 궁금해졌다.


또 자유와 다르게 '억압'에 대한 그의 기억이 아팠다. 심지어 그것이 선명하다 하여 더 그랬다. 온정신으로 살아내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자 슬픔이 가시고 아랫배에서 뜨거운 것이 휘돌았다.


195쪽, 내가 가장 자유로웠을 때


"나는 당신을 왜 사랑하는지, 무엇이 당신을 고통에 빠뜨렸는지, 그 죽음마저도 나는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가 질문하는 자로 변모되는 순간이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동안 살아 있게 된다. 질문함으로써 죽음을 유보한다. 폐허 위에 서서 질문으로써 씨앗을 심는다. 그 무수한 질문들이 내 삶에 뿌리 내리고 나무의 싹이 나고 숲을 이룰 때까지. 그 질문들의 뿌리는 사랑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한 나는 질문한다. 당신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질문이 나를 살게 한다. 나는 살아서 오래도록 당신에 대해 묻겠다. 당신이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내가 받은 천형이다."
217쪽, 당신의 죽음을 어루만지는 언어들


갈등으로 점철된 모녀의 관계에서 벗어나 여성이 같은 여성으로의 관점으로 잡다한 혈연은 걷어내고 인간으로 마주한다. 그래서 때론 안쓰럽고 때론 부스럼이 날릴 것처럼 푸석거리기도 한다.


시작은 자극 혹은 경악이었지만 엄마라는 모성에 갇히고 아내라는 헌신을 강요받았던 한 여성이 오롯이 인간으로서 갖는 욕망에 대한 해방 일지다. 하여 이 시대를 살아내는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욕망을 이해하게 된다.


성별에 관계없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남성 역시 그들의 욕망에서 태어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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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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