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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Sep 30. 2024

[에세이]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

| 가을을 닮은 삶의 공감

우리는 지나치게 행복에 몰두하는 건 아닌지를 묻는 작가의 일상적 감각들이 궁금했다. 제목도 그렇게 감각적으로 다가왔고. 게다가 책 속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던 그의 편지도 가을이었다.



저자 민용준은 TV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도 한다. 계속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게 바람이라는 그는 <무비스트> 영화 기자로 출발해 다양한 미디어에 칼럼과 기사를 써왔다 한다. 40세 전에 책을 내자는 목표를 40세가 되던 지난 2022년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내고 ‘2023년 세종 도서’에 선정까지 되었다니 부럽다.


내게 가을이란 계절의 감각은 딱히 좋다기보다 싫은 쪽이 더 큰데 장애를 갖게 된 후 바람이 매서워지는 겨울은 온 몸이 뻣뻣해져서 몸도 마음도 위태로워져서 좋은 계절을 묻는다면 겨울을 몰고 오는 가을이 싫다고 대답하는 편이다. 한데 그의 입장에서의 가을을 궁금해 하면서 나는 또 나대로 내게는 어떤 가을이 있었던가,를 조금은 길고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나이 마흔에 비로소 찾아온, 마음 껏 떨어뜨려도 좋을 상념과 언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회를 밝히는데 왠지 모르게 다소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부연에 부연하며 살짝 포장하는 듯 하달까.


게다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체에는 칼럼이 아니길, 에세이길 바라는 마음이 세게 불기도 했다. 뭐 시작은 그랬다는 이야기고 읽다 보면 그의 가을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음을 부연하게 된다.


핫, 뜨거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거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두고 일조량 변화, 호르몬의 간섭, 운동에너지를 채집하는 그의 계절 감각을 보고 있자니 분명 이과생일 게야 암만 근데 이과생의 계절은 다 이래? 라는 궁금증이 휘몰아친다.


허, 재미지는 구석도 있다. 쓸쓸하게 떨어져 버린 가을 낙엽을 사랑에 진심인, 그러니까 그의 표현대로라면 ‘붙어 먹는데’ 환장한 벌레 '러브 버그'가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떨어진다고 재치 있게  풀어낸 이야기는 쓴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한 맛처럼 딱딱한 문장에도 살짝 말랑한 기분을 추가한다.


“날마다 일정하게 일상의 균형을 잡는 이의 삶이란 타인의 시선으로는 원만한 평온과 평정의 연속일 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오늘을 거듭하는 안간힘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61쪽


영화 <퍼펙트 데이즈> 평론을 옮겨 놓은 듯한 그의 진심에선 애써 붙잡고야 마는 누군가의 일상이 정작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무거움도 스몄다. 천장에 매달린 모빌의 위태로움을 해결하면서 안도하는 저자의 일상 평정도 나름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살아나가야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만 겨우 그럴 수 있는 사회가 올바르지 않다는 게 당연한 줄은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음이 공감되는 게 슬펐다. 왠지 히라야마는 웃지 않는 사람일 것 같다. 영화를 봐야겠다.


읽다가 눈에 박히듯 질끈거리게 만드는 문장들이 가슴에 박혔다. 목울대를 건드려 대는 통에 불편해지기도 했다. 저자의 엄마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처럼 빚을 잔뜩 지고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내내 살면서 빚을 끊임없이 불려 놓는 사람이었다. 책임은 엄마의 몫이었고.


그래서 손이 거북이 등껍질보다 더 두껍고 발톱보다 더 뭉툭해질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나도 그처럼 아버지와의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함을 대신 억울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괜찮은 관계의 아버지와 내가 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뭔가를 쓴다는 행위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 하는 와중에 뇌를 알코올로 닦아낸 기분이 들었다는 '돈 드는 것도 아닌 공짜고 안 되도 본전'이란 조언에 고졸로 용기 내 시작한 영화기자로의 발을 내디뎠다는 이야기를 풀었다.


이게 은근 동질감을 가지며 줄기차게 읽고 서평을 올리고 앉은 나를 겹쳐보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 분명 주객이 전도됐지만 그와는 다르게 나는 어느 출판서도 입사 제의는 해오지 않으니 나는 여전히 방구석에서만 이러고 있다. 공감은 공감이고 이게 은근 굴욕적이다. ㅋㅋ


암튼 글의 요지는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다 보면 딱히 보상이 없더라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예전에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분명 옳다. 불꽃남자 정대만을 빗대 그의 영광의 순간을 기억해 내는 센스가 멋지다.


133쪽, 난 지금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다면 삶을 방해하는 세상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직접 최전선에 서서 자신을 짓누르려는 사회 편견과 맞서 싸우며 자신이 뱉은 말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146쪽, 안녕, 마왕


그냥 넘길 수 없는 마왕에 대한, 그러니까 내가 마왕의 노래와 함께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연예인이 바로 마왕이라서 그의 대한 소회는 마왕은 더 이상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지 않다는 확인이어서 침울했다. 맞다. 기억한다. 그의 독설은 약자가 아닌 기득권을 가진 불평등을 만드는 이들을 향한 질타였음을. 그래서 그의 100분 토론은 빛이 났다.


챕터 <내 사전에 아버지는 없다>를 읽으면서 나는 왜 아이가 둘이나 있을까 생각한다. 결혼 전에는 막연하게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들 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분명히 하자면 결혼이 생의 종착지라는 기분으로 만들지 않았다.


즉 결혼은 내게 있어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환승하는 기적과 같은 일쯤이었다. 한순간에 몸이 불편해진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과 만난다는 일은 드라마나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였으니. 그리고 여기엔 아이는 없었다. 나의 환상은 아내까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딱히 좋은 아빠가 있지 않았던 탓에 나 역시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도 결심도 생각도 분명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도 딱히 아이를 원하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우리 부부에겐 자연스럽게 딸과 아들이 있다. 아니다. 둘째는 시험관 아기였으니 의지였겠다. 근데 왜 그런 의지를 가졌었을까?


그래서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굳이 후회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일이라서 부부끼리만 알콩달콩 살아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는 정도는 있다.


여하튼 <응답하라 1988>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못 얻어 먹어 삶은 무한히 차별적이란 걸 깨닫는 덕순에게 아빠 동일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서툰 거 아니겠냐’며 덕선에게 선처를 바라듯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었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면 안 되는 삶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서툶을 장착하고 살아야 하는 아주 고된 여정이라는 걸 한참 늦게 깨달은 탓에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호기심을 담보 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찍 알았다면 나도 저자와 같았을까?


203쪽, 내 사전에 아버지는 없다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챕터를 읽다가 '풋'하고 실소가 나왔다.


"결혼이란 좀처럼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여행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계획하고 예상한 방향 안에서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계획한 적도 없고, 예상한 적도 없는 길로 들어서서 즐거울 때도 있고, 난감할 때도 있을 것이다. 둘이라서 좋을 때도 있고, 그래서 나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끝내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국 둘이라서 지나온 시간 덕분일 것이다." 294쪽,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아내를 '아내'로 말하는 일이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는 기혼 여성이 많다는 그의 놀라움에 덩달아 놀란다. 나도 아내를 '아내'라고 별 뜻 없이 말하고 다녀서다. 심지어 그처럼 발음의 울림이 효율적이거나 편하다거나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와이프는 와이퍼하고 발음이 비슷해서 쓰기 싫었고 마누라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고유 명사 같아서 싫었다. 집사람은 더더구나. 어쨌든 미아리 점성술사가 내 사주를 5복이 모자라 6복을 타고 난데다 그중에 아내 복은 터질 지경이라고 했는데 정말 용하다. 처복은 인정! 주술사님, 근데 나머지 복들은 언제 터져주려나요?


저자가 일상으로부터든 사유에서든 가을에 대해서가 아닌 관해서 쓴 이 책은 가벼운 일상 사유부터 짜증 나는 정치, 민감한 사회 문제와 묵직한 가정사와 관계까지 푹 빠져들어 읽게 만든다.


이제부터 가을은 그의 표현대로 ‘낙하’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잔잔하고 담백한 그의 긴 이야기에 조금 따뜻한 가을이 왔다.



오타가 눈에 띄어 혹 재판이 있다면 수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옮긴다.

134쪽 6줄, 림밖에는 링밖에가 아닐까?

156쪽 2줄, 외고 마감은 원고 마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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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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