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지만 끔찍한!
읽기 전에! 약간의 스포가 될지 모릅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건 어쩌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라면 죽는 것 역시 그의 영역이건만 '죽음'을 연장도 아니고 새로운 '탄생'으로 반복 재생한다는 아니 하려는 시도를 동반한 생각 자체가 끔찍하다. 진시황이 꿈꾸던 불멸의 존재가 될 날이 멀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그렇다. 생명공학자 윌(키아누 리브스)는 바이오 나인이라는 연구소의 지원으로 인간의 의식을 로봇에 이식하여 몸은 사라지지만 의식은 존재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시도한다. 여러 차례 실패 후 CEO의 압박을 피해 가족과 여행에 나선다. 폭우가 내리는 길에 사고로 가족이 모두 죽게 되고 윌은 주저 없이 '없던 일'로 되돌린다. 복제 전문가인 동료 에드(토머스 미들더치)가 연구 중인 인간복제와 자신의 연구인 의식 이식을 동시에 시도한다.
영화는 톰 크루즈가 허공에 손을 휙휙 휘저으며 화면을 넘기던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가이 피어스가 거대한 뇌 구조를 펼쳐 보이던 <아이언 맨 3>의 영상미를 복재한 것처럼 보여주거나 의식을 이식한 로봇이라든가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는 디테일하고 사실감 있어 볼 만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꽤 불편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 복제에 대한 중요한 생명 윤리를 비롯해 인간은 그저 전기적 화학작용의 결과인가 감정이 존재를 결정짓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관객들에게 하고 있다.
윌이 보여주는 가족애를 매개로 하는 윤리적 질문을, 사랑하는 이가 죽고 복제를 통해 다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되살린 것'인지 '만들어 낸 것'인지, 그들은 대체 불가한 같은 인간인지 대체 가능한 물질에 불과한 것인지. 그들이 고장 나거나 기능의 변화가 있다면 언제든지 새롭게 재탄생을 통해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연 이런 일들이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끔찍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키아누 리브스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정쩡한 걸음걸이나 개연성 없는 장면들이 그의 연기를 갉아먹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