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대리 & 로그과장

한전 KDN 사보 | 연재 IT 칼럼

by 정윤희
©Jeong Youn Hee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컴퓨터 잘 하는 사람과 컴퓨터 못하는 사람. 그래서 사내 분위기도 따로 금을 그어 표시해 둔 것은 아니지만, 기계를 잘 다루고 디지털에 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암암리에 나누어져 가고 있다. 사실 처음 이런 분위기 조성될 즈음엔 ‘그게 뭐 대수야’ 하며 배째는 스타일일지라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스스로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고 느끼면, 남들이 자신을 ‘따’ 시키기 이전에 스스로 오토 ‘따’ 생활로 조용히 접어들 정도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만년 로그과장를 살펴보자. 새 프로젝트만 맡으면, 여기저기서 이메일을 날려오고 이메일 속에 서류까지 첨부파일로 집어넣어 보내니, 답답할 노릇이다. 아, 직접 와서 주면 얼마나 좋아, 커피도 한잔 하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도 하고 일 이야기도 얼굴 보면서 하면 좀 돈독해지겠어 하고 투덜대 보지만, 대세에 밀려 간신히 이메일 주고받는 법 하나는 배워두었다. 게다가 하루하루 까마귀 고기를 먹은 양 자주 잊어버리는 현상이 많아져, 메모하는 습관으로 버텨다 보니 남들은 쓰지도 않는 회사 다이어리 속에 빼곡하게 써넣고, 그도 모자라 책상 여기저기 포스트잇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로그과장은 그래도 아날로그 스타일이 여전히 손에 익고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나서 좋다. 또 부하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컴퓨터로도 대화(메신저)를 나누며 일을 진행하는 모양이지만 우리의 로그과장은 여전히 직접 불러 얼굴 보고 얘기한다. “어이, 디지대리, 그 서류 자료조사는 다 끝냈어?”


그렇다면 우리의 디지대리는 어떨까? 매끈하게 잘 빠진 PDA 한 대로, 이른 아침부터 저녁의 스케쥴 관리는 물론이고,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을 비롯해 동료, 친구들의 연락처까지 완벽하게 데이터 베이스화한 전화번호부, 그날그날 꼭 해야 하는 투두리스트, 최근 출장가서 찍어둔 자료사진까지 모두 한꺼번에 관리한다. 똑똑한 비서가 따로없다. 어디 그뿐인가. 점심시간 휴대폰으로 찍은 동료들과의 사진을 버튼 하나로 모두의 휴대폰에 전송해주고, 하루하루 기분좋게 지내라는 응원의 문자 메세지도 놓치지 않고 주변 동료들에게 날린다. 그것도 모자라 노트북은 항상 끼고다녀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대처하는 스피드도 칭찬할 만하다. 틈틈이 인터넷 써핑으로 찾아낸 토픽거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까지 전달해 주니, 대체 사람인지 기계인지... 암튼 디지털이 좋긴 좋은가 보다 할만큼, 디지대리의 일상은 완벽하기 짝이없다. 무인도에서도 노트북 한 대면 디지대리는 일년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근데 이 편한 세상을 두고 왜 우리 로그과장님은 맨날 저렇게 나만 불러대는 거지?’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생활 패턴 자체가 디지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굳이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장비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미 많은 디지털을 누리고 접하면서 사는 중이다. 이렇게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어울리도록 변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젊은 세대들이야 어려서부터 접하고 살아 자연스럽게 친숙해지겠지만, 기성세대들 중에는 상당히 불편을 겪거나 디지털이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디지털로 완벽하게 컨버전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고, 아날로그를 고집하며 살자니 나만 외로이 거꾸로 사는 듯하기도 할 법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서로를 배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공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보자, 로그과장과 디지대리를 놓고 비교했을 때, 디지대리만이 살길이라고 표를 던질 사람들이 많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디지대리가 지하철에 그 잘난 비서 PDA 양을 두고 내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 그 PDA 양과 노트북 군이 고장으로 완전히 못쓰게 됐다면, 그 안의 데이터가 모두 날아간다면 말짱도루묵이다. 이쯤하면, 묵묵하게 자기 방식대로 메모하고 노트에 잘 적어두고 고장날 염려없는 로그과장의 비법이 제대로 먹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분리시키지 말자. 탄탄하게 다져진 아날로그 위에 디지털이 존재해야 그 빛을 발하는 법이고,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받쳐주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밀어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미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이라고 비웃을 일도 없고, 디지털 방식이라고 골치아프고 어려울 일도 없다. 또한 한가지만 고집하기 보다는 부분부분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을 골라 적당하게 적용시키는 것이 제일 좋을 듯하다.


오늘, 디지대리와 로그과장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터넷 맞고를 친다.



글 | 정윤희 (디지털 칼럼니스트)


©2006. JEONG YOUN HEE. All rights reserved.




Episode

글 속에 등장하는 문물은 시조새급이라 할 수 있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첨예한 대립은 지금도 이어진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아날로그와 빈티지가 환영받는 추세다. 이렇게 시간은 돌고돌고돌고, 유행도 돌고돌고돈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짱과 동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