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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16. 2018

<로마>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온기처럼

ⓒ 로마 / 알폰소 쿠아론



창작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고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폰소 쿠아론'감독의 신작 <로마>는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와는 결을 달리하는 영화입니다. 일단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로마를 연상케하는 제목은  멕시코 시 중산층이 사는  '로마'입니다. 흑백필름의 1970년 멕시코, 정치적 격변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의 해체와 결합을 담았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따뜻하고 유려한 연출로 해체된 가족과 국가의 위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자신을 키워 낸 유모들에 대한 헌사이자 누구나 경험하는 결핍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한 중산층 가족의 가정부인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지긋이 바라보는 롱테이크, 인물의 시선을 따르는 절제된 카메라 워크, 음악이 없이 오로지 사운드로 압도하는 파고듦, 보장된 영상미와 미장센은 우리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무엇을 지우게 합니다.



ⓒ 영화 로마 속 거품은 청소와 파도의 이중성을 갖는다


조용하고 꾸준히 시작되는 클레오의 일과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매일이 모여 역사가 되는 시간의 밀도를 경험할 수 있죠. 오프닝에서 보여준 타일 거품 청소는 후반부 해변에서 겪게 될 사건과 오버랩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주는 안도감을 지켜준 클레오를  가족의 품으로 자연스럽게 안내합니다.


영화에서 남성은 지워지거나  조롱의 대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의사이자 가장인 아빠인데요. 출장을 간다는 핑계로 외도를 할 뿐만 아니라, 클레오가 출산을 앞둔 병원에서도 지질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클레오의 남자친구는 또 어떻고요. 극장 대신 날씨가 좋으니 밖에 나가자면서 본인 집에 데려왔고 임신한 클레오를 피해 도망갔죠. 남자친구 페르민이 다니는 무술장에서 한 발로 서기를 시연하는 사기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가족의 어머니와 클레오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 평범한 일상이 모여 삶을 완성한다


영화는 소외된 자를 보듬는 계기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 비주류, 이혼녀, 여성을 삶을 비참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그냥 난처할 뿐 언제든 새로운 모험을 떠나면 되는 희망으로 그려집니다. 주위를 빙빙 돌던 클레오가 파도(역경)을 만나 가족의 품에 들어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등극하는 과정(연대). 누구도 소수자가 될 수 있는 가변성과  외로움에서 비롯된 연대였습니다.

연대가 없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너와 나, 안과 밖, 이곳과 저곳을 굳이 나누려 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묵묵히 이어나가는 일상을 배경 삼아 극복하는 용기는 모두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 영화 <로마>는 마치 감독의 유년시절을 옮겨 놓은 듯하다.


영화 <로마>는 유난히 정직한 카메라 프레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는 꾸준히 작업한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알폰소 감독이 잡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영화는 꾸밈없는 일상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점점 황폐해져가는 가족, 집, 관계, 국가적 문제에서 희망은 곧 사랑이란 깨달음은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로마>는 넷플릭스 영화라 극장 개봉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극장과의 제휴를 통해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며 아트나인에서는 4K, 7.1사운드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 깜짝 등장하는 <그래비티> 시퀀스도 눈여겨보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그리비티>의 영감을 준 영화 <우주 탈출>을 관람하는 모습으로 포착됩니다. 



평점: ★★★★
한 줄 평: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따스한 온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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