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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17. 2023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초난강 초밥

아는 게 더 무서울 때..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의 일본영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게 있다. 희미해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추억.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았던 '정'이 아닐까? 여름만 되면 이 영화가 떠오르게 될 것 같다. 텅 빈 극장에서 나와 또 다른 관객 둘이 오롯이 이 영화를 보았다.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던 순수함이 그리워서일까? 그때의 친구가 떠올라서일까? 내내 펑펑 울면서 히사와 타케를 지지했다. 여름, 레트로, 향수. 어떤 맛인지 알지만 끊지 못하는 중독성 강한 그 맛이 끌리는 이유다. 일본 특유의 노스탤지어 범벅의 영화지만 맞닿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진심으로 통했던 영화다.    

 

1986년 여름싱그러웠던 우정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컷

대필 작가로 살아가고 있던 중년의 히사(쿠사나기 츠요시)는 아내와 딸과 꾸린 가정도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꿈도 잘 풀리지 않았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아 괴로웠던 어느 날. 고등어 통조림을 보고 1986년 여름을 곱씹으며 쓰지 못했던 글을 마음껏 헤쳐나가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타케(하라다 코소스케)가 히사(반카 이치로)네 집에 찾아온 날이었다. 이 녀석은 말도 안 섞어 본 히사에게 탄탄 바위를 넘어 부메랑 섬까지 돌고래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한 번도 멀리 떠나본 적 없는 히사는 약점 알고 있다는 타케의 협박에 못 이겨 억지로 여행을 떠난다. 

    

새벽같이 일어나 분홍 자전거를 타고 물통과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파란 하늘과 빛나는 바다를 곁에 두고 떠난 모험은 힘들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그날 이후 한 뼘 더 성장한 히사와 타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사소한 오해 때문에 서먹해진다. 그렇게 둘의 짧았던 여름이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컷

영화는 실제 나가사키 현에서 나고 자란 '카나자와 토모키'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두 배우와 두 달 동안 합숙하며 80년대 나가사키의 감성을 재현했다. 성장의 계절 '여름'을 앞세워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는 데 주력한다. 8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X세대와 문화 소비층인 MZ 세대는 레트로를 공유할 수 있는 영화다. 한국에 초난강으로 알려진 성인 히사 역은 쿠사나기 츠요시가 맡아 작가로서 잘 풀리지 않았던 감독의 과거를 투영해 완성했다.     


히사는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지만 겉모습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는 아이다. 일 년 내내 민소매만 입는다며 반 아이들이 타케를 놀려댈 때나, 동생들과 엄마랑 지내는 허름한 집을 보고서도 친구가 되어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히사의 진심이 퉁명스러운 아웃사이더 타케에게도 전해진다.    

 

초밥을 좋아하지만 비싸서 잘 못 먹는다는 히사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고등어 통조림으로 만들어 준 타케만의 초밥은 어떤 선물과도 비교도 할 수 없을 행복한 밥상일 것이다. 용기가 부족한 히사에게 타케는 "뛰겠다는 마음을 먹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다.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배려하고 응원하며 천천히 닮아간다.     


히사와 타케는 학교가 끝나고 신나게 놀다 헤어질 때면 "마따네(또 보자)"라고 인사했다. 안녕이란 말 대신 다시 만나자는 약속처럼 말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 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순수했던 시절의 친구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게 있을까 싶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고등어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컷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히사에게 영감을 선사한 1986년 여름이 부럽기만 했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꿈꾸게 하는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다. '또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친구를 떠올려 봤다.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그로 인해 한층 풍요로워지는 오늘이 이 영화에 봉인되어 있어 무척 행복했다.     


맛의 기억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살아가는데 필수인 음식에 대한 탐미는 문화 양식을 만들고 국가 전체의 이미지를 그려내기도 한다. 음식은 가족에 대한 추억, 문화, 민족의 정체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태도가 되어 준다.     


쉴 새 없이 범람하는 먹거리 앞에서 먹방, 맛집에 대한 열풍을 좇았다면, 한 번쯤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통조림처럼 변치 않는 맛의 기억. 가끔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 한 캔을 저장하고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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