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사랑하다가 부부가 된 경우와 맞선으로 부부가 되면서 알아가는 과정. 모두 결혼이란 제도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약속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애초부터 사랑보다는 목적이 앞선 결혼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을 거다. 사랑 없이 시작했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서 믿음은 불신이 되고 집착이 되어간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유 없는 만성 복통 치료차 결혼한 남자
오랜 바다 생활에 지친 선장 야코프는 통 잦아들지 않는 복통의 원인을 '아내가 없어서'라고 단정한다. 이유가 독특한데 세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셰프가 던진 말이 발단이었다. 마침 프랑스에 정박했고 카페에서 친구(세르지오 루비니)와 대화를 나누다 충동적으로 아내를 찾고자 한다. '지금 카페로 들어오는 첫 여성에게 청혼해 결혼할 것'이라던 야코프. 이게 무슨 대책 없는 제안인가 싶지만 이를 또 받아들인 리지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결혼 생활을 나름 순탄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신혼일지라도 일 년에 6개월은 바다에서 보내야 하는 야코프의 직업 때문에 가끔 만나 데이트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어색한 동거 생활을 이어간다. 바다 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다. 곁에서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없어 곤경에 처한 남편은 친구라던 데딘(루이 가렐)이 영 못마땅하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참다못한 야코프는 사설탐정까지 붙여 둘 사이를 미행하지만 '보기 드문 아내'라며 어떠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 탐정은 더 깊게 파보겠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아내를 믿으려고 한다. 아니 믿고 싶었으리라. 그러는 사이 호화 유람선을 몰던 중 큰불이 난다. 야코프는 구조요청 대신 전속력으로 달려 비 오는 곳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많은 생명이 본인의 판단에 달린 상황 속 독단적인 선택이었지만 결과를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를 향한 사랑과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상태였다. 답 없는 질투 대신 방법을 바꿔 함께 공연도 보며 상대를 파악하고 친해지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냉담한 리지의 태도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아내에게 자신은 가끔 들어 오는 남편, 생활비를 주는 물주일 뿐이었다. 뭍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다고 해도 가정에서 정작 아내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남편은 속상할 뿐이다. 이후 천직이라 여겼던 선장을 그만두고 마음에도 없는 육지 생활을 이어간다. 품위 유지와 술값에 쓰는 돈을 벌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에 찌들어 간다.
드디어 리지는 반응을 보인다. 자기 몰래 바람도 피워보며 거짓말도 해보라는 의외의 제안이다. 재미없는 남자는 딱 질색이라는 걸까. 야코프는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른 여성과 밀회를 나눈다. 그럴수록 아내를 향한 사랑은 깊어진다. 결국 부부 사이에도 자극이 필요했던 걸까. 둘의 사랑이 커질수록 미래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내 아내 이야기> 결말 및 해석 *스포일러 주의*
영화는 야코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몽환적인 연출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해간다. 마치 집에서 반려동물이 뭐 하는지 궁금한 집사처럼 느껴진다. 리지의 속마음은 전혀 알 수 없다.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아내, 아내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도 묻지 못하는 바보 남편. 올바르고 고지식하며 성실하기까지 한 100점짜리 남편이지만 리지는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디덴을 의심하다 현장을 급습하지만 둘 사이가 정말 불륜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7년 후 듣게 된 소식만이 세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는 듯하다. 리지는 이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삶을 마감했다는 거다. 6년 전 자살했고, 남편에 대한 속죄였는지, 뒤늦게 깨달은 사랑의 후회였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소통하지 못하고 끝난 안타까운 여운
<내 아내 이야기>는 헝가리 작가 '밀란 퓌슈트'의 동명 소설(1942)을 원작으로 한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로 연결된 꿈의 미스터리함과 신비로움을 더했던 헝가리 출신 '일디코 엔예디'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묘령의 여인 리지(레아 세이두)를 만나 육지에 정착하게 되는 선장 야코프(헤이스 나버르)의 인생 2막에 관한 이야기다. 1920년 경 유럽 총 7장으로 장황하게 진행되는 일기 같은 형식이다.
시대극의 아름다운 배경과 배우들의 고혹적인 매력이 조화를 이룬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169분으로 들려준다. 레아 세이두의 치명적인 팜므파탈 매혹과 헤이스 나버르의 바르고 뚝심 있는 일관성이 대조를 이룬다. 이 때문에 레아 세이두는 더욱 빛나며 명화에서 튀어나온 3D 인물을 보고 있는 듯한 황홀감이었다. 또한 두 사람의 노출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아름답게 담겼다. 인물의 감정을 명확히 정하지 않고 진행되는 감독의 연출 특성은 변치 않고 이어 온 뚝심이지만 평작이라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