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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26. 2024

<파묘> 영화로 만나는 뜻밖의 한일전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묘를 이장한 풍수사 상덕(최민식)와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속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다. 미국 LA에 살고 있는 한 가족으로부터 거액의 의뢰가 들어온다. 알고 보니 3대째 알 수 없는 대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박씨 집안이었다.      


대한민국 최상위 무당 화림과 봉길은 조상의 묫자리 문제임을 알아채 이장을 제안한다. 오랜 인연인 대한민국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대통령을 염했던 장의사 영근과 한 팀을 이뤄 해결하고자 한다. 5억 짜리 의뢰지만 산꼭대기 위치한 묘는 악지 중의 악지, 40년 경력의 풍수사를 단번에 겁먹게 했다.      


이를 눈치챈 화림은 어린아이를 빌미로 상덕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불길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이장과 굿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협의한다. 각자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네 사람은 미신이라 부르지만 권력이라 믿는 힘을 통해 최고의 팀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개관을 원치 않는 의뢰인 박지용(김재철)의 태도가 수상하긴 했지만 일단 일을 해결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자 한다. 이후 알 수 없는 기이한 사건에 휘말린 네 사람은 숨겨진 관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한다. 과연 그 관의 목적은 무엇이고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취재와 경험상상이 만난 촘촘한 서사     

<파묘>는 풍수사, 장의사, 무당이 개인과 나라의 한(恨)을 해결하는 묘벤저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다. ‘파묘’란 묘를 파는 행위를 말하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묘가 잘 못 되었을 때 이장하는 의식도 포함이다. 좋은 기운이 흐르는 땅에 조상을 매장하는 장례문화와 결합한 이야기는 음양오행, 민간신앙과 결합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바하>의 박목사(이정재)에 투영한 본인을 교회 다니는 장의사 영근(유해진)에 빗댔다. 영근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존재다. 풍수사와 장의사 최민식과 유해진의 티키타카는 버디 무비의 케미도 선사한다. 화림과 봉림으로 구성된 사제 케미는 남매 케미까지 더하며 힙한 감성을 끌어올린다.     


오컬트의 큰 테두리 안에 미스터리, 스릴러, 가족 드라마까지 복합적인 장르지만 산만하지 않다. 여는 공포 영화처럼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스케어나 음향은 자제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미신, 전설을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와 결합했다. 그럴싸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디테일은 오컬트 장인 장재현 감독의 인장이다.    

 

100년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경험, 비 오는 날 이장하면서 화장해야 했던 경험, 할머니의 틀니를 간직하고 있었던 경험을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최민식은 “전작들만 살펴봐도 만듦새가 세련되고 촘촘히 짠 카펫처럼 구멍이 없다”라며 탄탄한 시나리오에 반해 처음으로 오컬트 영화의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단 두 편 만에 한국 영화의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꾸준한 믿음으로 한국적인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뚝심의 당연한 결과다. “팬데믹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을 위해 화끈하고 즐길 말한 오락적인 부분을 가미했다”고 밝히며, 베를린의 젊은 층의 반응을 보며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샤머니즘으로 푼 뜻밖의 한일전     

<검은 사제들>이 희생을 통한 희망적인 이야기였다면 <사바하>는 신을 향한 인간의 물음을 담은 슬픈 이야기다. <파묘>는 전쟁과 침략의 피해자였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파내 어루만진다. <파묘>는 개운함을 주려 했다는 의도대로 후반부는 꽉 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풍수사, 장의사를 따라다니며 얻은 땅에 깃든 정신, 가치관은 쇠침이란 단어로 모인다. 오랜 아픔으로 물든 대한민국의 상처를 도려내 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는 ‘첩장(묘를 겹침)’ 그러니까 험한 것의 등장 이후 분위기가 바뀐다. 마치 1부와 2부로 나뉜 하나의 영화다. 두 세대와 직업군이 한마음으로 뜻밖의 한일전 경기를 치른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조여오는 스릴,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위트의 적절한 균형이 포인트다.      


여전히 정설과 낭설 사이를 오가는 쇠말뚝 논란을 영화적 허용으로 해석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직언으로 스님 기순애를 향한 의문을 남긴다. 조선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해 일제 강점기 백두대간에 박았다는 쇠말뚝의 정령화다. 음양사, 오니(일본 정령) 등의 정체를 숨긴 구성은 첩장의 구조와 일치한다.     

 

결국 <명량>(2014)의 이순신, <봉오동 전투>(2019)의 홍범도가 연상되는 최민식의 묘한 응징까지 더해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김상덕(최민식), 고영근(유해진), 이화림(김고은), 윤봉길(이도현), 오광심(김선영), 박자혜(김지안)에서 비롯된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의미심장함을 더한다.     

주말 재관람하러 극장에 갔다가 젊은 관객층이 꽉 찬 좌석을 보고 놀랐다. 목요일 개봉에서 수요일 개봉으로 빨라진 일정을 의식하지 않고 목요일 개봉한 <파묘>는 4일 만인 2월 25일(일) 오후 4시 30분 누적 관객 수 2,010,203명을 동원했다.      


작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등극한 <서울의 봄>보다 2일 빠른 속도다. 후반부 떠오르는 역사의식이나 애국심 고취라는 진지함보다는 빌런, 요괴를 처단하는 활약으로 즐기는 분위기다. 마치 <서울의 봄>의 전두광을 실존 인물이 아닌 캐릭터로 생각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장르 영화로는 드물게 천만 영화 타이틀을 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여 100원짜리 동전과 이순신, 김고은의 차번호(0301), 유해진이 모는 운구차(1945), 최민식의 차번호(0815) , 보국사, 철혈단 등 역사에 관심 많은 관객이라며 숨겨진 항일 이스터에그를 찾아나는 재미가 쏠쏠해 N차 관람이 예상된다.




*동티난다: 동티(動土)귀신을 잘 못 건드려 해를 입다는 말.

*대살굿: 영화를 위해 창작한 단어. 기본적으로 ‘타살굿’의 형태와 비슷하다. ‘타살굿’은 돼지나 소를 잡아 제물(祭物)로 바치는 굿.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음양오행: 음양은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것. 오행은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로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를 이른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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