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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24. 2024

<왓츠 러브> 워킹 타이틀 로코의 밋밋한 진화


결혼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시달리는 다큐멘터리 감독 조이(릴리 제임스)는 옆집 사는 카즈(샤자드 라티프)의 결혼 소식에 놀란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데이팅 앱으로 즉석만남을 즐겼던 만큼 결혼은 너무나 먼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엠마 톰슨)가 아빠에게 버림받았던 걸 본 상처 때문인 걸까, 절친의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아서인 걸까. 좀처럼 누굴 못 믿어서 철벽 방어에만 몰두하는 조이는 결혼이 와닿지 않는다.     


한편, 카즈는 무슨 일인지 직진 태세다. 할머니, 부모님, 형도 맞선으로 결혼해 잘 산다며 전통에 따르겠단다.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닌 것 같아 생경한 마음이 커졌지만 마침 차기작을 고심하던 때라 결혼 과정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불편한 마음이 자라난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다 안다고 믿었던 카즈네 가족, 파키스탄 문화 속에 들어가 보니 낯설게 느껴졌다.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막바지 촬영차 파키스탄에 간 조이는 그동안 익숙해서 몰랐던 감정으로 갈등하고야 만다. 급기야 카즈의 결혼을 말리고 싶어진다.     


아닌 척하지 말고 솔직히 드러내기     

영화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충돌을 사랑에 빗대 풀어나가고자 한다. 각본가 ‘제미마 칸’은 10년 동안 파키스탄에서 결혼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영국과 파키스탄의 연애와 결혼 문화, 세대 차이를 이야기에 녹였으며, 길게는 일주일이나 걸린다는 파키스탄의 결혼 과정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결국 빙빙 돌아가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답을 구하라며 ‘아닌 척하지 말고 솔직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영화 속 캐릭터는 각자의 사정과 진심을 숨긴 채 거짓말로 무마하려 든다. 조이와 카즈는 서로 호감이 있었지만 그저 친구로서 곁을 지켰다. 결국 카즈가 먼저 조건 맞는 사람과 결혼하려 들자 조이도 마음을 숨긴 채 엄마가 추천한 무난한 수의사와 의미 없는 데이트를 하게 된다.     


카즈의 집은 영국 남자와 결혼한 자밀라를 꼭꼭 숨겨야 했지만 사돈댁도 새 신부의 과거를 숨긴 채 강제 결혼으로 무마하려 했었다. 다들,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안 그런척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실을 보여준다. 본인이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강요된 희생은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는 범. 영화는 달콤한 거짓말의 쌉싸름한 결과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사랑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고?     

영화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 결혼의 방식,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소개한다. 실제 파키스탄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중매결혼이 진행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결혼이 늘어나는 만큼 비슷한 듯 다른 결혼 이야기에 공감 포인트가 생길법하다.      


그래서일까. 맞선의 장점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낭만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결혼이 목적이라면 낭비 없는 최적화된 방식이 바로 중매란 거다. 달콤한 연애가 끝나고 결혼이란 현실과 마주한 혼란을 줄이는 방법도 맞선이란 취지다. 처음부터 명확한 의도로 접근하는 방식이라 실망도 줄어들고 이혼율도 낮다고 주장한다.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되, 배우자의 의무와 가족의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할 제도임을 강조한다. 성격, 취미, 종교 등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상황이 늘어나는 끝나지 않는 배려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냐고? 맞선은 도박 아니냐고? 이런저런 의문을 품을 때면 부부의 인연은 불꽃처럼 터져 금방 꺼지는 스파크보다 은근히 데워지는 찻잔처럼 오래 지속되는 게 중매결혼이라고 딱 맞게 비유한다.   

   

절절한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결국 완성되는 결혼, 애초부터 삶을 연대할 수 있는 동지,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려는 목표만 같다면. 집안, 사회, 자녀를 위한 최선이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뜨거운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가. 어차피 사랑의 유통기한은 3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건 맞춰 부모님이 짝지어주는 상대와 선 결혼 후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가성비 좋은 만남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왓츠 러브>는 로맨틱 코미디 명가 워킹 타이틀의 올해 신작 영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워킹 타이틀의 진화 과정의 단계로 볼 만큼 다양하면서도 뻔한 설정을 적절히 배합해 놓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귀여운 여인>, <미트 페어런츠>, <나의 그리스식 웨딩>, <러브 액츄얼리> 등을 언급하거나 동화 비유와 패러디로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엠마 톰슨의 통통 튀는 매력은 기대 이상이다. 독립적인 딸을 걱정하는 보편적인 엄마 같으면서도 푼수 같은 귀여움으로 신 스틸러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여사친 남사친 사이로 등장한 조이와 카즈 역의 릴리 제임스와 샤자드 라티프는 실제 오랜 기간 친구 사이로 전해져 배역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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