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 휴가 온 루이스(맥켄지 데이비스)와 벤(스쿳 맥네이리)은 딸 아그네스(앨리스 웨스트 레플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2살이 다 되도록 애착 인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이 걱정되면서도 짜증스러운 벤은 양육 문제로 루이스와 종종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기는 하나, 리조트에서는 다른 가족들도 있기 때문에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약간은 위태로운 부부이다.
한편, 휴가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가족이 있었다. 무설증을 앓고 있는 아들 엔트(다니엘 허프)를 하나 둔 패트릭(제임스 맥어보이)과 키아라(아이슬링 프란쵸시)는 친절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즐거워야 할 휴가지에서 그늘진 표정의 엔트가 눈에 밟혔으나 아그네스와 편견 없이 노는 모습에 부부끼리도 마음 놓고 친해지게 되었다.
사실 패트릭의 첫인상은 좋지 못했다.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국경 없는 의사회에 가입되어 있는 의사였다. 욱하고 거친 부분이 있지만 크게 악의가 있어 보이지 않아 자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국의 스산하고 축축한 날씨는 온화한 이탈리아의 행복을 저절로 떠올리게 했다.
얼마 후 패트릭은 자신의 집으로 가족을 초대하는 사진엽서를 보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루이스 가족은 지친 심신도 쉴 겸 패트릭의 시골집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조작된 친절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상한 일들은 연이어 일어난다. 급기야 거절하기 힘든 호의가 이어지고 돌아가려던 결심이 선 순간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알고 갈등하게 된다.
원작과 다른 결말, 할리우드식 리메이크
<스픽 노 이블>은 동명의 덴마크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버전이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인정받았다. 원작은 북유럽 특유의 서늘하고 시니컬한 기운이 강하다. 원작을 본 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며칠 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스멀스멀 서늘하게 파고들어 기분이 좋지 못했었다. 관객을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버리는 원시적이고 과격한 결말은 오랜 잔상을 남긴 까닭이다.
할리우드 버전은 그 불쾌한 정도는 유지하되 엔터테이닝 효과를 더했다.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와 제임스 맥어보이, 맥켄지 데이비스의 연기 차력쇼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23 아이덴티티>에서 다중인격 캐릭터를 소화한 경력자답게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한 연기를 펼쳐냈다. 삐져나오는 본성을 어설프게 숨긴 악마가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폭력적이며 마초적인 패트릭은 주변 공기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인데 목을 조이는 압박감과 찍어 누르는 강압적인 성격을 가진 정글의 맹수 같다. 결코 상대방이 화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은근한 친절이 압권이다. 채식주의자에게 오리고기를 먹도록 종용한다든지, 초대된 가족의 딸을 바닥에서 재우는 등 심기를 건드리는 불협화음이 이어진다.
반면 루이스는 겉으로 봐서는 초식동물처럼 온순해 보이나 위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고 뜻밖의 기질을 발휘한다. 우유부단한 남편을 부추겨 동력을 제공하는 활약이 두드러진다.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은 상징적인 존재다. 행동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상황을 책임감 있게 돌파하려 든다. 패트릭이라는 악의 표상과 대치하는 심리전부터 후반부의 액션까지 빌드업하며 잔재미를 안긴다. 맥켄지 데이비스만의 고유 표정과 몸짓으로 충분히 전달되며, 초반 형성된 스릴을 쥐고 쉽게 놓아 주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낯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과도한 친절은 괜한 의심만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호의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난감한 상황은 연이어 발생한다. 영화는 그 관계성, 즉 상호작용에서 벌어지는 애매함을 이용하여 트랩을 설치하고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대가 없는 친절이 불러온 작은 파장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특히 딸 아그네스의 애착 인형이 토끼라는 점이 가족의 미래를 예측하도록 하나, 영리하게도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한다. 조심히 쌓아 올린 서스펜스를 한 번에 터트리며 카타르시스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한 할리우드식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