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 중 단편 ‘재희’를 영화화했다.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지며 다양한 에피소드가 추가되며 나다움을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로 각색되었다.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에서 퀴어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만큼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남성보다는 2030 여성 취향을 반영한 톤이다. 성인이 되어 만난 이성의 순수한 우정과 돌봄이 찡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미드에서나 보던 여자들의 로망 '게이 친구'를 한국식으로 만나보는 설렘도 크다.
편견과 제약을 딛고 노상현이 보여준 ‘성소수자 장흥수’는 어떠한 이유든 기준이 될 거라 믿는다. 노상현은 [파친코]의 병약한 이삭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180도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소설 속 ‘영’이 아닌 영화 속 ‘흥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또한 솔직하고 자유분방하지만 늘 사랑을 갈구하는 재희의 여린 내면은 또 한번 김고은의 연기 내공을 갱신하는데 일조한다. 특별해 보이면서도 평범한 인물, 겉과 속이 같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그려냈다.
소설의 영화화 교본으로서 충분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원작이 30대 게이의 입장에서 연인, 친구, 엄마와 얽힌 일화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위트와 해학을 살렸다면. 영화는 타자였던 재희를 더욱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다. 글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던 재희의 속마음을 영화화하면서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
아웃사이더의 찡한 성장통
20살 대학에서 처음 만난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는 성별부터 취미까지 너무 달랐지만 서로 아웃사이더임을 직감했다. 한쪽은 자신을 드러내기 바쁘고, 다른 쪽은 숨기는 데 익숙했다.
재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이 매력이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유리 멘탈의 소유자다. 금사빠 같아도 순수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유목민이다.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면 완전히 정착하고 싶은 순정까지 품고 있다. 남들이 만들어낸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이었지만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며 응수했다.
흥수는 어릴 적부터 성 정체성을 감추려 자발적 고립을 택한 인물이다. 남들과 다른 비밀 때문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깊게 빠지지 않으려고 벽을 쳐왔다. 엄마 앞에서도 당당하지 못해 스스로 괴로워한다. 우연히 재희에게 약점을 들켜 전전긍긍하지만 ‘너로서 세상에 서라’라는 말을 듣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둘은 함께라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흥수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지만 온전히 흥수를 좋아해 주는 재희로 인해 용기를 얻는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준 누군가를 통해 삶을 증오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었다. 혐오와 반목이 난무하는 세상에 용기 내어 전진한다.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내친김에 함께 살면서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약점과 비밀까지 능수능란하게 덮어주는 소울메이트가 되어간다.
너로서 충분히 아름다운 청춘
영화는 스물에 만나 13년 동안 단단해진 관계성을 톺아본다. 풋풋하고 자유로웠던 20대를 지나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사회인이 되어가는 30대, 결혼으로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순간에 늘 함께 있었다. 흑역사와 연애사의 외장하드였던 그들의 젊음은 여전히 반짝이는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재희는 방황하던 사랑의 종착지로 결혼을 택하며 한 발짝 나아가게 된다. 재희의 연애사를 돌아보면 사랑에 진심이었지만 언제나 끝이 좋지 못했다. 상대방의 호불호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처받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1순위가 되는 존재만 집착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퀴어는 소재일 뿐 ‘나란 누구인가’에서 시작해 ‘나다움을 찾아가 보자’를 마음으로 귀결되는 성장통이다.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케미와 연기 앙상블이 원작의 캐릭터를 뛰어넘어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추억하기 충분하다. 더불어 겉모습만 보고 타인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접한다면,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도 제공한다. 나와 네가 다른게 틀린 게 아니듯이. 나와 얼마나, 무엇이 다른지 알아가는 시도를 존중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인터뷰]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