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 30세기에서 온 금쪽이가 바꾼 세상

by 장혜령

영화 <아르코>는 무지개 망토를 입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2932년에서 온 소년 아르코와 2075년 근미래를 살아가는 소녀 아이리스의 우정과 모험을 그렸다.


손으로 그리는 2D 애니메이션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는 그림체와 사실주의에 입각한 투박하고 거친 질감의 그래픽 노블의 비주얼이 감정을 자극한다. 지브리의 감성이 바다 건너 프랑스로 이식된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다. 생태주의적 작화와 음악 모두 지브리의 오마주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후반부에서는 <인터스텔라>, <E.T>의 감성을 담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곤 사토시 스타일을 재해석해 낙관적 미래관을 선보인다. 팬데믹 시기에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우고 비엔베누 감독은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믿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인류가 희망과 상상을 멈추지 말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외로운 금쪽이의 스펙터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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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기에 사는 소년 아르코는 혼자 동물을 돌보며 시간 여행을 하는 부모님과 누나를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 얼른 자라서 공룡을 보러 가고 싶지만 아직 12살이 되지 않아 비행이 금지되어 답답한 마음이 크다.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던 아르코는 가족들이 자는 틈을 타 누나의 무지개 망토를 훔쳐 첫 비행을 시도하게 된다.


배운 적은 없지만 있는 힘껏 날아올라 시간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폭풍이 몰아치는 2075년에 불시착해 버렸다. 2075년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지상에서 생활하는 게 특이했다. 버블이란 투명 돔(보호망)이 집을 덮고 있어 심각한 기후 재앙도 막아주고 있었다. 버블 안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고 로봇이 대부분의 육체노동을 해주기 때문에 걱정 없이 일에 몰두하고 여가를 즐겼다.


한편, 아이리스의 부모는 평일에는 홀로그램으로만 아이들을 만난다. 바쁘다는 핑계로 갓난쟁이 피터와 아이리스를 미키에게 맡긴 채 주말에만 찾아온다. 한창 사랑과 온기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근미래는 크게 낙관적이지 않다. 아이리스는 또래보다 차분하고 조용한 아이로 자라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세상에서 신기한 이벤트를 바라던 아이리스는 숲에서 다친 아르코를 발견하고 미키의 도움으로 치료를 마친다. 하지만 이를 이상하게 본 삼형제의 추적에 노출되어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고, 아르코를 집으로 데려다줄 무지개를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된다.


무지개 너머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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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르코(arco)’는 음악에서는 활로 켜는 주법이며 이탈리아어로 활(아치)을 뜻한다. 스페인어로 주인공의 이름을 합한 arco iris(아르코 아이리스)는 무지개를 말한다. 활처럼 구부러진 반구형의 무지개를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아르코가 아이리스를 만나 펼치는 모험은 빛과 어둠, 파괴와 재생을 말한다.


영화는 명확하게 환경 문제를 초점으로 삼아 가족의 중요성과 타인과의 우정, 나아가 인류애를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르코에게 ‘나도 데려가 줘’라고 말하는 아이리스의 부탁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래 축적된 불안과 우울함은 아르코와 만나며 믿음으로 변했고,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게 했다. 부모와 떨어져 베이비시터의 관심 속에만 살아가는 아이리스의 내면을 얼어붙게 하기 충분했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관심과 보호가 절실하다.


아이리스가 30세기에 대해 묻자 아르코는 잦은 산물과 해수면 상승으로 땅에 살 수 없는 인류가 끝내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아이리스는 상상력을 더해 마치 본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 이는 이후 아르코의 미래를 아이리스가 그렸다는 암시로 설명된다. 두 사람은 시공간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분별한 욕심으로 멸망하지 않으려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현 인류의 책임 의식을 묻는다.


육아 로봇은 치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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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미키가 전하는 뭉클함은 기대 이상이다. 근미래에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로봇이 돌봄을 담당한다. 육아 로봇 미키는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만나며 인간 보다 더 인간미를 갖춘 존재로 그려진다. 차가운 로봇의 따스한 온기로 아이들을 키운다. 산불 때문에 위험한 불길을 뚫고 전진하는 모성애, 아이들을 가까스로 구한 후 꺼져가는 기억을 부여잡고 동굴에 벽화를 남기는 부성애가 인상적이다. 미키가 그린 감성적인 동굴벽화는 이후 아르코가 집으로 돌아갈 단서가 되어주고 막연한 두려움이 지배하는 미래를 가능성으로 채운다.


2075년 이후 아르코가 사는 2932년까지 산불로 파괴된 자연은 휴경(자연 순환 휴식기)에 돌입한다. 인간이 자연 파괴의 대가로 큰 교훈을 얻었으며 로봇은 사라졌다. 인간 중심의 친밀감이 다시 중요해진다. 인간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기계로 대체되는 디스토피아처럼 보이지만. 마치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 위로 무지개가 뜨는 희망처럼 함께 해낼 수 있다고 격려한다.


<아르코>는 아이들과 함께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어른들에게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심어주고 아이들에게는 알록달록한 색채로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우고 비엔베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29회 안시 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일찍이 감독의 재능을 알아본 나탈리 포트만이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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