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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pr 17. 2019

<러브리스> 사랑이 수단이 된 사람들

© 러브리스, Nelyubov, Loveless, 2017,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리바이어던>으로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을 받은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로 1 만에 국내 관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러브리스>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을법한데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러시아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러시아의 주목할만한 감독입니다.


진짜 사랑은 없고 쾌락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전략한 시대, 러시아 이야기지만 한국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직시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이혼율은 현재 50%를 육박한다고 합니다.  견고한 얼음강에 던지는 돌덩이처럼 현대사회의 큰 파장을 예고합니다.  



알료사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혼을 앞둔 부부의 날카로운 대화 속 아이를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12살  알료샤(마트베이 노비코프)는 부모의 대화를 듣고 절망한 채 사라집니다. 둘은 이미  각자의 애인이 있고, 증오와 분노만이 남아 있죠. 아들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새삶을 시작하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복을 전투적으로 찾아야 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날 둘은 누구보다도 쾌락적인 하루를 보내지만 아들의 실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아이가 사라졌는데도 슬퍼하거나 걱정하기는 커녕 부부는 제 탓하기 바쁩니다. 남편은 보수적인 직장에서 해고될까 전전긍긍이고, 아내는 임신은 내 인생의 실수였다며 결혼 자체를 부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찾아헤매는 진심은  아이를 찾는 수색대 뿐입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혼전임신으로 인생을 망쳤다는 여성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불행의 대물림은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제냐 어머니, 어쩌면 '보리스(알렉세이 로진)'의 아이를 임신한 애인에게서 훗날 듣게 될 말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어리석게도 항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쉽게 부모를 탓할 수 있을까..



<러브리스>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LOVELESS 즉, '사랑 없는'입니다. 사랑이 사라진 세상, 건조하고 불안한 서스펜스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적재적소에 쓰인 날카롭고 요동치는 피아노 소리,  눈 내리는 겨울의 황량한 모습, 조명 없이 자연광에 의지한 무채색 풍경, 무표정하고 어딘지 결핍되어 보이는  표정들이 사랑이 떠난 세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리스의 차에서 듣는 종말에 관한 뉴스, 마지막 장면 제냐가 무관심하게 보는 우크라이나 내전 뉴스를 통해서도 재확인됩니다. 지금 삶은 불행할 뿐이고 행복을 찾아 새 출발했지만 또다시 방향을 잃고 반복하는 불행. 미로에 갇혀 나갈 길 없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을 보는 듯 답답하고 쓸쓸해집니다.


더불어 제냐가 꾸었다던 '이가 뽑히는 꿈'으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가 빠지는 꿈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거나  죽는다는 해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황량한 그 자체일 거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러시아 사회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광대를 자처합니다. 누구도 왕에게 진실을 고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 악화되어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주인공 제냐의 옷에 적힌 큼지막한 '러시아' 로고로 나타납니다. 이는 국가를 향한 은유 수도 있고, 감독 말대로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죽은 혼》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러브리스>


덧,  아이는 실종인지 납치인지 단순 가출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결말을 지어주지 않았음에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블랙홀 같은 경험은 이미지에 갇힌 관객들에게 신선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아들 알료사는 초반에 몇 분 등장한 후 내내 이름으로만 불리는데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이의 선명한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내내 지배하고 있습니다.





평점: ★★★★★

한 줄 평: 보여주지 않아도 보여 준 듯한 선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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