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핀잔을 듣습니다. '어른이 되어가지고..', '좀 어른답게 굴 수는 없어? 철 좀 들어라', '어른이면 다 잘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었을 뿐인데 준비 없이 어른이 되었습니다. 몸만 커졌지 마음은 그대로인 어른이에게 세상은 '어른스러움'이란 엄격한 자격요건을 던져주었죠. 때론 어른의 삶이 살짝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른을 그만 둘 수 없잖아요?
영화 <어른도감>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과 아닌 일, 내가 어른이 맞나 의구심이 들 때 오목조목 따져보아야 할 백과사전 같은 영화입니다. 아이 같은 어른, 어른스러운 아이를 통해 세상이 만든 틀에 조금 벗어나 있더라도 괜찮다는 다독임을 주는, 참 따스한 위로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인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연기는 처음이라는 이재인 배우를 발견한 영화입니다. 첫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이재인 배우. 애어른이 되어버린 퉁명스러운 '경언'을 맡아 엄태구 배우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버디무비를 선사합니다.
능수능란하게 작업 거는 모습과 기름 바른 듯 느끼한 말재간, 여심을 사로잡는 요리 솜씨까지 미워할 수 없는 사고뭉치 캐릭터 재민. 엄태구 배우는 그동안 스크린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을 벗어던지고, 감정에 휘말리는 제비(?)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도대체, 진짜 어른 맞아요?
열넷 '경언(이재인)'은 아빠 장례식장에서 삼촌이라고 주장하는 생면부지의 아저씨를 만납니다. 경언은 아빠가 아플 때도 한 번을 오지 않더니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삼촌 때문에 영 심기가 불편합니다.
한편, 삼촌이란 명목으로 아빠 보험금까지 모두 털어간 삼촌.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위험한, 조금은 귀여운 패밀리 비즈니스를 급조하게 되죠. 두 사람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약사 아줌마(서정연)에게 부녀로 가장한 사기극을 꾸미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일은 꼬일 대로 꼬여버리게 됩니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삼촌, 진짜 삼촌일까 의심하던 경언은 서서히 경계를 풀게 됩니다. 삼촌도 한때는 가수를 꿈꾸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던 멋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나쁜 상황이 있는 거지,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 부모를 잃은 같은 고아라는 동질감이 점철되며 삼촌을 이해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준다는 건 돌려받지 못할 선물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영화는 경언에게 감정을 이입토록 합니다. 삼촌을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라 나누지 않습니다. 묘한 연민과 동정심, 모성애를 품게 하는 삼촌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각인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가능한 의리, 피가 당기는 가족애가 느껴집니다. '혈연관계라는 건 특별한 거야,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이란 말을 내뱉는 재민과 '너무 믿으면 안 돼요.'를 읊조리던 경언이 드디어 특별한 가족을 이뤘으니까요.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훈훈하고사랑스럽습니다. 영어 제목 어덜트후드(Adulthood)처럼, 재민은 처음으로 누구를 부양할 책임감 갖춘 어른이 되었고, 경언은 세상을 향해 나갈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영화 <어른도감>은 단순한 드라마 장르에 국한되기엔 아까운 가족영화, 성장영화 또는 귀여운 버디무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화상 캐릭터 누구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네! 맞습니다. 본인일 수도 있고, 가족 누구일 수도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의 결함을 메꿔가는 모든 관계는 돌려받지 못할 당신의 시간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겠지요.
별점: ★★★★
한 줄 평: 보고 나면 입가에 엄마 아빠 미소 가득, 오랜만에 따듯한 행복감으로 텅 빈 마음을 채우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