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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사자> 오컬트 영화라기보다는 판타지 액션 쪽

by 장혜령
IMG_20190801_230818_749.jpg 사자, The Divine Fury, 2019, 김주환



여름 극장가 텐트폴 영화 중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사자>는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의 신작이다. 박서준과 한 번 더 호흡을 맞추었고, 든든한 조력자로 안성기를 영입했다. 이 둘의 반대편에 맞서는 악의 하수인으로 신예 우도환을 내세워 극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오컬트 영화라 착각하는 이유

영화 <사자> 스틸컷


영화 <사자>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드라마 <손 the guest>가 생각나는 오컬트 장르라 착각하기 쉽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컬트는 겉옷일 뿐 속내는 판타지와 액션, 공포 가득한 미스터리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선한 믿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신을 부정하던 파이터 용후(박서준)가 아버지 같은 사제(안성기)를 만나 악마와 맞서는 이야기다. 여름철 극장가에서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게임이나 이종격투기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거슬린다면 할 말이 없다.


일단 포스터를 살펴보자. 검은 구름과 까마귀 사제복을 입은 신부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은 히치콕의 <새>나 리처드 도너의 <오멘>을 연상시킨다. 의뭉스러운 표정의 세 남자는 세상에 퍼진 악(惡)과 관련되어있음이 분명하다. 어둡고 음산한 이야기가 예상된다.


영화 <사자> 스틸컷


애석하게도 <사자>는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어린 시절 신앙의 근원이자 삶의 중심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신에 대한 믿음도 세상에 대한 확신도 사라진 이종격투기 챔피언 '용후'를 전면으로 다룬다. 어느 날 꿈에 아버지가 나온 후 손바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긴다. 밤잠을 설치다가 용하다고 찾아간 무당에게 집 남쪽에 보이는 성전으로 가면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곳에는 바티칸에서 구마 의식을 하러 온 안신부(안성기)와 최신부(최우식)이 있었다.


즉, 구마 사제와 악마의 대결 구도가 충분히 오컬트 영화라 착각하도록 만든다. 용후 손에 생긴 상처는 그냥 생긴 상처가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난 상처와 같은 자리이며 이는 신앙이 깊은 자에게 생기는 성은이다. 잠깐, 용후는 간절한 기도만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깨져 상처받은 인물이다. 신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마치 마귀가 인간의 모습에서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영화는 이제 판타지란 본모습을 꺼내고자 한다.



속내를 드러내는 판타지 액션, 핵주먹의 탄생

영화 <사자> 스틸컷


구마 의식에서 안신부를 구한 용후는 이후 각성한다. 마치 아버지의 환생 같은 안신부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에는 다 이유가 있고,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신부는 이번 생에 소임을 다하면 그뿐, 신의 부름을 따르는 신부 본연의 자세를 보여준다. 용후는 이 영감님을 그냥 둘 수가 없다. 안쓰러운 뒷모습이 그날의 아빠가 떠오르니까.


파이터의 힘과 믿음이 구마 사제의 영적 기운과 콤비플레이를 이룬다. 노련한 연륜과 신선한 패기가 만나 악마 퇴치 팀워크를 이룬다. 사제 케미, 부자 케미, 투톱 케미의 절정이다.


영화 <사자> 스틸컷


한편 악을 퍼트리는 검은 사제 주교 지신(우도환)은 강남에 클럽 주인이다. 뱀파이어로 착각하게 만드는 섹시한 용모와 차가운 분위기는 퇴폐적인 악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클럽을 악의 소굴을 설정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에 아주 용이하다. 힘들게 직접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참 영특한 발상이다.


악은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또한 우리의 생각을 읽기 때문에 간사한 꾀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내적 믿음이 중요하다. 그 대상이 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영화는 사람은 선한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부는 못해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신의 부름을 받은 사자의 의미

2011041912121472.jpg 성 제롬과 사자 : Saint Jérôme et le lion (출처: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RMN)



좋은 사람은 무엇일까?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선을 위해 싸우는 사람 모두가 사자라 말한다. 영화의 제목인 '사자(使者)'란 신의 부름을 받는 자, 혹은 그리스도를 대신해 심판하는 자를 뜻한다. 동물 사자(lion)와도 연관되어 있어 중의적인 뜻을 갖는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엽서의 그림은 [성 제롬과 사자]다. 이 그림은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었더니 악마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손바닥에 난 상처가 바로 사자 발에 박힌 상처다.


사자는 성경에서 용맹함과 신앙의 대표적인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 중세 시대는 사자를 심판하는 그리스도의 짐승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동물의 왕, 피라미드 꼭대기의 포식자인 사자가 악마를 물리칠 수 있는 명분이 갖추어졌다. 요즘 각광받는 이종 격투기 챔피언이라는 설정과 맞아떨어진다.



영화 <사자> 스틸컷



이로써 용후의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니저 조카가 신내림을 거부해 눈이 멀었듯,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다 고생 끝에 받아들이기로 한 용후의 고군분투기다.


영화 <사자>는 마블 시네틱 유니버스(MCU)처럼 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한국형 시리즈 영화다 .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영화 <사제>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는 문구가 나온다. <사제>는 최신부(최우식)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말 것!




평점: ★★☆

한 줄 평: 가짓수 많은 식당이 맛을 잃어버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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