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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ug 23. 2018

<살아남은 아이> 우리 사회가 관용해야 할 죄의 무게

© 살아남은 아이 / 신동석


며칠 전 CGV 아트하우스 내부 시사실에서 영화 <살아남은 아이>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 초청 및 수상으로 2018 올해의 발견이란 부제가 따라다니고 있는 영화인데요. 신동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괴물 같은 영화란 찬사부터 연대급 연기자들의 호연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은폐된 진실, 진실은 저 너머에



아들은 잃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애써 일에 몰두해 보려고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은 억누를 길이 없죠. 한편 아들 은찬이 목숨을 내놓고 구한 아이 '기현(성유빈)'을 우연히 마주친 부부는 기현을 통해 상실감을 조금씩 치유합니다.

꿈이 없던 아이가 도배 일을 배우며 꿈을 찾아가고 닫혀있던 부부의 마음이 풀어지는 찰나,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입 밖에 내놓는 아이. 영화는 꽁꽁 숨겨놓은 비밀을 감당할 수 있는 있을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듯합니다.



죄, 용서, 희망에 대해 묻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진지하고 묵직한 드라마의 힘,  다수의 폭력에 희생된 소수자를 향한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플래시백이  단 한 장면도 없어 물놀이의 상황을 오로지 엇갈린 진술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화법이지만,  어떤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을 객관적 시선을 지켜주죠.   때문에 관객은 후반부 펼쳐질 아이를 잃은 부모의 배신과 당혹감,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다들 내 아이 보호에만 급급한 이기적인 부모들, 의심은 가는데 물증이 없는 답답함,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안. 배우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세 배우가 진중하게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극중 성철의 직업은 인테리어 집 사장님입니다. 기현에게 뭐가 되고 싶냐 물었을 때 하고 싶은 것 없다는 대답이 마음에 걸렸는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도배 일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는데요.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엄격한 사장님처럼 물심양면으로 기현을 챙기는 모습이 꼭 부자(父子) 사이 같았습니다.


왜 도배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래되고 망가진 집을 새롭게 다시 만들어 주는 일이야 말로 죄를 용서한 새 출발의 상징,  진실을 덮자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면 과정을 담은 성장영화기도,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의미를 만들어가는 가족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굳게 믿었던 진실은 사실 조작된 것이고,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과 쓰라림.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인간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영화는 죄와 용서에 대한 피상적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관객 스스로 성철, 미숙, 기현의 마음이 되어 다각화된 심리는 체험해 보길 원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경중을 떠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사소한 언행과 잘못된 위로가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묵직한 울림의 영화였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8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별점: ★★★★★
한 줄 평: 삶은 때론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싸워야 하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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