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패티슨과 줄리엣 비노쉬가 만났다
우주와 아이로 시작하는 이질적인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주선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지구는 우주에서 왔고, 우주는 거대한 생명을 품은 가능성이다. 블랙홀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파괴하는 자궁과도 같다.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에 작은 지구가 담겨 있다. 불모지에서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인간은 뭐든 만들어 내고, 뭐든 망쳐 놓는다. 그리고 작은 희망만 있다면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만들 수도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정부는 범죄자를 모아 태양계 밖으로 내보냈다. 죗값 대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사명을 장착한 채로 말이다. 아마 지구 에너지는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곱 범죄자는 극단적인 실험의 희생양이 되고야 만다.
박사 딥스(줄리엣 비노쉬)는 생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이를 만들고 블랙홀의 회전 에너지를 추출해 돌아오란 허울 좋은 미션을 수행 중이다. 정작 탑승자는 원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지만 박사는 통제와 회유로 실험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경악 무도 한 짓도 서슴지 않으며 생명을 관장하는 박사의 권력은 나날이 커진다.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 한다.
인간은 본디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몬테(로버트 패틴슨)는 체제에 맞지 않는다며 버려진 범죄자 중 유일한 금욕주의자다. 따라서 성적 욕망을 풀 수 있는 방을 몬테는 이용하지 않는다. 수도승처럼 몸과 마음을 항상 정갈하게 유지하고 건강한 몸을 지킨다. 때문에 딥스의 표적이 된다.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DNA를 통해 생명을 얻으려는 광기가 극에 달한다. 그렇게 아이는 우주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손에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영화는 우주선의 모든 인물이 사라지고 몬테와 아기만이 남은 상황부터 시작한다. 우주선에 마련된 작은 정원은 생명을 잉태하는 태양이며 아이는 새롭게 만들어진 행성 즉, 또 하나의 지구 같다. 하지만 이들은 버려진지 오래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보고서는 몇 백 년 후 지구로 도착할지 의문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몬테는 윌로를 살뜰히 키운다. 그렇게 소리와 공기, 희망 없는 삶에서 나아갈 의지를 비축한다.
<하이 라이프>는 터부(taboo,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다. <렛 더 선샤인 인>의 '클레어 드니'가 연출을 맡아 여성 감독 약진에 힘을 보탠다. 특유의 감각과 독특한 소재로 알려진 제작 배급사 A24의 최신작이기도 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 본능의 스릴, 상류 인생을 꿈꾸는 하류 인생에서 모종의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우주에서는 금기가 버젓이 통용된다. 원하지 않지만 임신에 이용되고, 24시간 생명 연장을 위해 거짓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며, 먹어서는 안 되는 배설물을 재활용해 살아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상류 사회, 하이 라이프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만든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뒤로 가는 것 같고, 멀어지는데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 태양계를 벗어나 블랙홀 근처를 지날 때 몬티는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건지 가만히 서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소외된 자들은 열심히 살아도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몸이 아프다. 누구보다도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가지만 늘 뒤처지고 있거나 제자리다. 이들은 지구에서는 절대 하이 라이프에 인입될 수 없다. 하지만 몬테와 윌로는 인류의 불잉걸이 될지 모른다. 미래는 장담할 수 없지만 희망은 꿈꿀 수 있음으로.
평점: ★★★★
한 줄 컷: 줄리엣 비노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