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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19. 2019

<영하의 바람> 겨울이 지나 봄이 오게 마련

우리 모두의 성장담

영하의 바람, Sub-zero Wind, 2018, 김유리



<영하의 바람>은 12살, 15살, 19살의 영하의 성장담이다. 누구에게나 12살, 15살, 19살이 있듯 각기 다른 연령대를 당시의 방식으로 위로를 전한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감독조합상을 받았으며 각본과 감독을 맡은 김유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단편부터 꾸준히 가족과 여성을 이야기 해왔다. 엄마 역의 신동미와 새아빠 역의 박종환을 빼고, 영하 역의 권한솔과 미진 역의 옥수분 또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데뷔작이다. 영화 속 캐릭터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극의 사실성을 높인다.


세 시점의 성장담

<영하의 바람> 스틸컷


영하(권한솔)은 12살 때 새 출발 하려는 부모에게 버림받을 뻔했다. 너무 어린 나이라 자신이 상처받았는지도 모른 채 15살이 된다. 새아빠 영진(박종환)과 함께 살게 된다. 아빠는 늘 영하의 말을 들어주었고 사랑을 듬뿍 준다. 그렇게 영하는 구김살 없는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친척이자 절친한 친구인 미진(옥수분)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늘 함께 할 수 없음을 가족 안에서 배우게 된다. 영하는 자라 19세가 되자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가장 따뜻하고 아늑해야 할 가정에서 냉랭하고 날선 시련은 점점 소녀의 삶을 옥죈다.


영하네는 새아빠와 단란한 가족을 꾸리며 살아간다. 넉넉하지 않지만 각자의 아픔을 보듬으며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있다. 실질적인 가장은 엄마다. 엄마는 가난한 우리 같은 사람이 성공하려면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신앙과 공부에 매달린다. 여성으로서 가장이 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려는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새아빠는 두 여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무능력한 무늬만 가장이다. 교회 목사가 되기 위한 보기 좋은 허울이 되어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새아빠는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겉보기만 가족이지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가족의 위기로 이어진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조리

<영하의 바람> 스틸컷


가족은 부조리가 생겨도 대충 넘어가는 때가 많다. 구성원 간 충돌이 생기더라도 지극히 사적이라 법적으로 처벌받기도 어렵다. 사랑을 매개로 더 잘해야 하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때가 많다. 이는 영화 내내 들려오는 바람 소리로 고조된다. 가족이라 더 많이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자기가 아픈지도 모르고 덮어버리기 일쑤다. 곪아버린 마음은 어디서도 치유받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갈 때가 많다. 가족 안에서는 충격적인 일의 단편이 아니라 사소한 일들이 모이고 쌓여 커진다. 때문에 영화는 큰 사건을 중심으로 따라가지 않고 담담하게 영하의 성장을 시점별로 담는다. 7년간 서서히 진행되는 이야기가 공감되는 이유다.


제목이 주는 이중적인 의미가 인상적이다. 기형도의 단편소설에서 따왔지만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영하는 추운 겨울 불어오는 칼바람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영하의 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소설 속에는 ‘차가운 바람’을 ‘영하(零下)의 바람’이란  낯선 단어로 쓰고 있다. 영하의 날씨라는 말을 쓰지 영하의 바람이 분다는 말은 쓰지 않는 것처럼. 영하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닮았지만 도드라져 보인다.


‘영하’는 주인공 영하의 이름이자 따스한 바람, 즉 봄바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기원하는 주문 같다. 겨우내 모질고 차가운 시련을 극복하고 새날,  봄날을 맞을 따스한 성장기를 응원하는 영화다.



영하의 칼바람에도 봄은 오게 마련

<영하의 바람> 스틸컷


<영하의 바람>은 주인공 영하의 7년간의 성장담을 섬세한 감정 변화로 담아냈다. 12세, 15세, 19세의 영하를 각기 다른 배우로 설정했다. 회상 장면 없이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면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로소 과거가 된다.  영하는 어떤 성년이 되었을까를 계속해서 곱씹는 여운이 크다. 명확히 끝나지 않는 감정, 누구 하나 꼬집어 악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가족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비유가 아닐까.




평점: ★★★

한 줄 평: 각자 다른의미의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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