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컨덕터>는 최초의 마에스트라 '안토니아 브리코'가 세상의 편견을 뒤흔든 실화다. 1927년 뉴욕, 네덜란드 이민자인 '안토니아 브리코'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가족마저 안토니아의 꿈을 짓밟는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깊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허락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발을 내디뎠다고 하더라도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지휘 영역은 전통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다. 마에스트로는 많지만 마에스트라가 없는 이유다.
기회의 땅 미국, 기회조차 평등하지 않다면?
안토니아(크리스탄 드 브루인)는 콘서트홀의 직원이다. 직원은 안내만 잘하면 될 뿐 장내에 입장할 수 없다. 콘서트가 시작되면 서둘러 나와야 한다. 더 듣고 싶은 음악도 마음껏 들을 수 없기에 용기를 낸다. 간의 의자를 들고 콘서트홀에 당당히 들어간다. 맨 앞의 자리에 의자를 펴고, 지휘자의 모습을 살피며 남몰래 꿈을 키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콘서트홀은 해고하기에 이른다.
생계가 급급한 안토니아는 피아니스트를 구한다는 말에 덥석 일자리를 얻는다. 사실 피아노를 칠 줄 알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청소부인 아버지가 피아노를 주워와 홀로 터득했을 뿐이었다. 피아노를 치면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에 마음 놓고 피아노를 쳐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후 어렵게 피아노 레슨을 받을 기회를 잡지만 오히려 스승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철저한 약자인 안토니아는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대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다사다난한 고난은 계속된다. 심지어 프러포즈를 받을 때도 아이를 낳아 살면 여성의 일생은 행복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늘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무시당하기 일쑤라 그 말이 틀리다고 증명하려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다. 자신은 사생아였으며 입양되었다는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된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부모를 한탄할 시간도 없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았다. 피아노 때문에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거듭되는 상처들로 분노하고 아파했다. 안토니아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음악과 망가진 피아노 건반 하나뿐이었다. 그 이상을 얻고자 하면 분에 넘치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프랭크(벤자민 웨인라이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없었다. 프랭크와 결혼을 한다면 사랑을 얻는 대신 꿈은 포기해야 했다. 사랑은 음악 앞에서 후자일 뿐이었다. 안토니아는 더 넓은 영역, 독일 베를린으로 무대를 넓힌다.
최초 여성 지휘자의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대공황 시대 미국이 배경이지만 21세기에도 낯설지 않다. 여성의 직업 영역은 넓어졌지만 아직도 두꺼운 유리천장이 가로막혀 있는 분야가 많다. 급기야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튀어야 한다는 말로 여성 교향악단을 꾸린다. 성공적인 데뷔 후 남성 교양악단도 받았지만 훗날 인기가 시들해져 사람들에게 잊혔다. 마치 여성의 도전은 한낱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성역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계속됨을 시사한다.
영화는 바흐와 슈바이처를 종종 언급하며 안토니아가 처한 상황을 비유한다. 지금까지도 바흐에 정통한 사람은 의사로 잘 알려진 ‘슈바이처’다. ‘열정을 기억하라’라는 명언은 안토니아가 가슴속에 새긴 말이다. 비록 슈바이처는 다음 생으로 음악을 미룰 만큼 의학에 미쳐있었지만, 바흐를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꿈 앞에 성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 마음이 옳다는 일을 해보는 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에 안토니아 브리코는 ‘어차피 비판받을 테니까’란 말로 응수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여성의 노력은 편견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비튼 대사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속 공공연한 차별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 <더 컨덕터>는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받아 관객과 만났다. 1920-30년대 뉴욕의 시대상을 완벽히 재현했다. 또한 아름다운 클래식과 재즈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영화다. 다만, 너무 긴 러닝타임에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편집해 간결하게 했으면 좋겠더라. 영화 스타일이 너무 올드하다.
평점: ★★☆
한 줄 평: 아직도 뚫지 못하는 유리천장, 마지막 엔딩에서 화가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