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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01. 2019

<크롤> 엎친 데 덮친 격, 재난과 괴수의 무차별공격

먹고자 하는 욕망과 살고자 하는 욕망의 격투

크롤, Crawl, 2019, 알렉산드르 아야



<크롤>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악조건을 총망라한 영화다. 재난, 괴수, 부상 등 한 가지 미션을 넘으면 다음 미션을 기다리고 있는 그야말로 생존게임의 연속이다. 이 방면에 재주 있는 ‘알렉산드르 아야’감독과 강인한 눈매가 인상적인 ‘카야 스코델라리오’ 만났다. 87분이란 시간 동안 군더더기 없이 목표지점까지 깔끔하게 완주하는 느낌이다. 장르 영화의 기본은 물론 뿌려놓은 떡밥을 수거하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마치 방 탈출 게임을 체험한 것 같은 공감각이 폭발한다.



영화 <크롤> 스틸컷



제목 ‘크롤(Crawl)’의 뜻은 자유형의 가장 빠른 수영법 중 하나로 주인공 ‘헤일리(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잘하는 것 중 하나다. 어릴 적 아빠의 권유로 수영을 했지만 현재 슬럼프가 온 상태다. 게다가 최근 아빠와 싸우기까지 해 소원해졌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아빠는 엄마와 헤어지고 나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언니의 전화를 받는다. 언니는 허리케인이 오고 있는데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이에 헤일리는 아빠를 찾아 허리케인을 뚫고 집으로 향한다. 아빠는 지하실에서 부상당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아빠를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악어 떼로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된다.


영화 <크롤> 스틸컷


<크롤>은 영리한 포지셔닝의 영화다. 대부분 장르 영화에서 제한된 시간과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 집중하지만 <크롤>은 약간의 변주를 준다. 반지하는 사방이 뚫려 있지만 어디든 나갈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파동과 소리에 민감한 악어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기 시작한다. 아빠는 이미 물렸고, 헤일리마저 방심하는 순간 악어 이빨에 여러 번 뜯겼다. 일단 지하실을 빠져나가야 하지만 물속 가득한 악어를 헤치고 나가기도 쉽지 않다. 물은 점점 차오르고 상황은 더욱 열악해져만 간다.



허리케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비바람을 물론 들이붓는 것 같은 비로 온 동네가 물에 잠기고 있다. 게다가 곧 제방이 무너질 거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순간의 폭발력과 자신의 한계를 믿어 보기로 했다. 헤일리는 아빠의 응원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상위 최고의 포식자다”


영화 <크롤> 스틸컷


딸은 아빠의 권유로 시작한 수영이지만 배워두길 잘했다. 두 사람은 코치와 선수, 아빠와 딸 관계, 멘토와 멘티를 오가며 콤비 플레이를 벌인다. 그래서 영화 관람 내내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계속되었다. 부상당한 아빠를 대신해 가족을 구하는 헤일리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기지를 발휘한다. 비록 대회에서 값진 메달은 못 땄지만 더 큰 위기를 극복하며 숨겨둔 기량을 마음껏 펼친다.


악어는 상어도 이기는 최상위 포식자다. 아마도 두껍고 거친 피부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B급 영화의 단골 소재였던 상어가 최근 변주되어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이제 장르 영화는 한 가지 설정만으로 공포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AR, VR 등 기술의 발달로 오감만족의 체험형 영화가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스크린을 쳐다보는 관객의 지루함을 달래 줄 다양한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47미터>처럼 식인 상어의 출현과 산소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맞물리거나 <맨 인 더 다크>처럼 눈이 보이지 않지만 군인 출신 노인이라는 예상 밖의 설정이 각광받고 있다.


극한의 한계상황을 설정해 끝장까지 몰아붙이는 장르 영화의 야심찬 변주가 반갑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가족을 구하겠다는 헤일리의 욕망은 최대 라이벌인 나 자신을 넘어서는 승리의 기쁨까지 쌍끌이 했다.




평점: ★★★

한 줄 평: 한계를 몰아붙이는 장르 영화의 야심찬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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