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날까 모르겠다. 우리는 일 년 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해 크리스마스에 받을 선물을 기대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점차 아무것도 믿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성장하면서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 왠지 모를 씁쓸함이 커진다.
<산타 앤 컴퍼니>는 크리스마스 특수를 맞아 개봉하는 프랑스산 크리스마스 영화다. 프랑스의 국민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알랭 샤바’가 또다시 연출과 연기를 병행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타 할아버지와는 거리가 있는 산타를 만나볼 수 있다. 마법 세계에 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산타 모습이 눈길을 끈다.
녹색 옷에 완전한 백발도 아닌 은발이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건 예사, 고집불통에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산타마을 아니, 9만 2천 명의 요정들과 선물을 만드는 산타 공장 CEO다. 연인 완다(오드리 토투)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건 물론, 순록과 대화가 가능하지만 정작 아이들과는 소통은 어렵다.
한 편,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바쁜 어느 날. 요정의 리더인 마그누스(브루노 산체스)가 감기에 걸리자 도미노처럼 다른 요정도 쓰러진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큰일 났다. 산타는 요정들을 살릴 비타민C 9만 2천 개를 구하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간다.
비타민C가 풍부한 카카두플럼을 찾아 호주에 가야 하지만 파리에 불시착한 산타. 경찰서 신세는 물론 한낱 이상한 노인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러다 토마(피오 마르마이)와 아멜리(골쉬프테 파라하니) 집 옥상에 도착하며 실마리를 찾게 된다. 부부는 아이들과 비타민C를 구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과연 산타는 비타민C를 얻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속 산타는 마음씨 좋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납품 기한을 맞추는 CEO도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산타클로스를 답습했는지 묻고 있다. 먼저 코카콜라 때문에 굳어진 빨간 옷을 입은 산타를 비꼰다. 산타는 모두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편견도 깬다. 매번 크리스마스이브에 천사같이 자고 있는 아이만 봤지, 실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 버거움을 느낀다. 전 세계 아이들의 소원 편지를 받고 선물을 만들어 배달하지만 정작 아이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던 거다. 때문에 산타는 가족을 위해 밤늦게나 들어오는 아버지 같다. 매일 일하느라 아이들 자는 모습만 볼 수밖에 없던 아버지의 지친 등을 쓸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심오한 세계관도 돋보인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배달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슬픔 시대에 살아야 한다. 산타는 자신이 본 환상에서 쓰디쓴 지옥을 맛봤다. 크리스마스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는 지옥일 뿐이다. 산타는 지금 세상을 사랑한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인류의 종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만 하는 거다.
산타를 통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이 유지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일은 마법처럼 그냥 풀리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바라는 소원도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 만들어 낸 현실적인 행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미래)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토마와 동생 제이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산타를 믿지 않게 되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동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짜 산타가 눈앞에 나타나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사랑을 되찾는다.
<산타 앤 컴퍼니>는 기발한 상상력과 좌충우돌 모험, 이색적인 산타와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은 전 세대를 위한 프렌치 크리스마스 영화다. 뻔한 크리스마스 영화, 가족 영화에 지친 관객에게 신선함을 준다.
평점: ★★★
한 줄 평: 산타가 이름을 불러줄 때, 잃어버린 동심이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