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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13. 2019

<그날은 오리라> 일제강점기 홍콩, 우리와 비슷한 역사

그날은 오리라, 明月几时有, Our Time Will Come, 2017, 허안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에 소개된 <그날은 오리라>는 <심플 라이프>, <황금시대>로 알려진 허안화 감독의 영화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여성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대만의 신구세대가 총출동했다. 펑위엔, 주신, 곽건화를 내세운 신(新) 세대와 곽도, 양가휘, 엽덕한 등 구( 舊) 세대가 함께 열연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1941년 일제강점기 홍콩을 배경으로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청춘을 애도한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세계적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 


홍콩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독립운동가들

영화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그날은 오리라>는 여성 감독의 시선이 머무는 따스한 독립항쟁 영화다. 용맹한 기개와 강철 체력으로 무장한 남성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여성운동가를 섬세하게 그렸다. 같은 시각 우리나라 또한 독립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아픔을 공유할뿐더러, 현재 격렬해지고 있는 홍콩 시위와도 연결해 볼 수 있다.


때는 1941년 홍콩, 문화인(지식인)을 핍박하는 일제를 피해 유격대가 탈출을 돕고 있다. 유격대의 리더 류흑자(주신)와 홀어머니(엽덕한)를 떠나 유격대를 돕는 전직 교사 팡란(펑위엔), 일본군 밑에서 일하는 스파이 리진롱(곽건화) 등.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소시민 영웅을 담았다.


일본군을 무자비한 만행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당시 홍콩은 돼지고기가 금보다 비쌌으며,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비명횡사하기도 했다. 폭발물이 터지는 건 예사, 여자를 유괴하는 등 흉흉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영화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혼란스러운 시기 유격대는 800여 명의 문화인을 홍콩에서 구출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지금 상황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젊은 세대였다. 세 주인공 팡란, 류흑자, 리진롱은 사랑과 우정을 버려가며 대의를 위해 목숨 바친다. 그들에게 감정은 사치였다. 전쟁이 없었다면 평범한 선생님이었을 팡란은 훗날 독립운동계 대모가 된다.


전쟁은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류흑자를 살인 병기로 만들었으며 팡란의 엄마는 딸을 도우려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영화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그들을 기억하는 유격대 막내 빈(양가휘)의 대화 장면을 간헐적으로 넣어 마음을 들끓게 만든다. 그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는 말로 존경의 의미를 대신하고 있다.



조국 광복의 염원에 여성이 있었다

영화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제목 ‘그날이 오리라’는 광복의 그날을 기다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말이다. 작전 성공 후 승리하고 다시 보자는 일종의 주문과도 같다. 원제는 소동파의 ‘명월기시유(明月几时有)’로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라는 의미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수조가두 水调歌头」(사패)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영화에서는 유독 시를 읊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육사「광야」, 윤동주「별 헤는 밤」등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마치 일제시대 조국 광복을 노래한 시나 소설이 생각난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영화 <그날이 오리라>는 그동안 남성 캐릭터의 보조 역할이나 엄마, 누이에 그쳤던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다. 팡란은 기르던 토끼를 엄마가 잡아먹을까 봐 몰래 놔주던 순박한 여성이었지만 시대의 부름 앞에 강인한 리더가 된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며 지금 같은 시대에는 모두가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굴곡진 운명을 애써 위로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도 미룬 채 국가의 안위 앞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 청춘들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딸의 대의를 돕고자 한 팡란의 어머니는 독립 앞에서 사라져간 이름 모를 여성들을 대변하고 있다.


마치 팡란은 <암살>의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을 연상하게 한다. 안옥윤이 복잡한 가정사 앞에서 나라의 독립을 택한 것처럼. 팡란도 가족과 사랑을 버리고, 주체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호연지기를 보여준다.


영화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허안화 감독은 신파나 과장됨 없이 평범한 영웅을 담았다. 그중에는 교사, 어머니, 청년,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한뜻으로 모였다. 무성한 풀숲 사이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잡초처럼 곳곳에 퍼져 있는 민중 독립투사의 모습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홍콩의 역사를 뒤바꾼 숨은 영웅들의 활약을 담담히 지켜볼 수 있다. 지금 홍콩의 상황과 일제시대 핍박받은 대한민국의 역사까지도 아우르는 계기를 만든다.




평점: ★★★

한 줄 평: 우리와 같은 아픔을 공유했던 그 시절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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