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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니티> 너와 나의 연결고리? 호불호 극명한 영화!

by 장혜령
세레니티.jpg



※ 영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세레니티>는 그리운 아버지를 자신이 만든 게임 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아들의 애절함을 담았다. 부자간의 소통을 매개로 게임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혼란 속으로 안내한다. 영화의 장르 또한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다 SF,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인지 헷갈린다. 장점이라 하면 다양한 장르의 혼합으로 차려진 밥상이며, 단점이라 하면 하나만 잘하는 맛집을 가야 하는 이유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나 영화 <노인과 바다>, <태양은 가득히>, <죠스>을 떠올릴 만한 고전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인터스텔라>이후 또 한 번의 호흡을 맞춘 매튜 매커너히와 앤 해서웨이 뿐만 아니라 다이안 레인, 제이슨 클락, 디몬 하운스 등 굵직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모든 배우가 육체적인 매력을 뽐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해변의 고요함과 아름다움과의 다소 대조적인 격정적인 호흡이 전반에 흐른다.


때문에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상상력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수위가 세다. 필자는 신과 인간의 교감으로까지 확장해 영화를 이해했다.

영화 <세레니티> 스틸컷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군인 출신 존(매튜 맥커너히)은 평온한 플라미스 섬에서 참치잡이 배의 선장이다. 저스티스(justice)라는 이름을 붙인 참치를 번번이 놓치자 승부욕이 생기던 찰나. 전처 카렌(앤 해서웨이)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뒤바뀐다.


카렌은 10년 전 이라크 파병에서 돌아온 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팜므파탈이다. 그 사이 돈많은 프랭크(제이슨 클락)와 결혼 했다. 둘 사이에 아들 페트릭이 있지만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낸지 오래다. 그래서 존은 카렌의 등장이 반갑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불행해 보이는 카렌은 천만 달러를 조건으로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바로 현 남편 프랭크을 없애 달라는 살인청부였다.


카렌의 제안이 통하지 않자 아들 프랭크를 들먹인다. 결국 당신이 옳았다며 폭력으로 지칠 대로 지친 영혼 없는 결혼 생활을 낱낱이 회고한다. 마치 자신의 선택이 아들의 성장에 영향을 준건 아닌지 자책하고 있는 듯이 마음을 흔든다. 아들 프랭크는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게임에만 빠져 있어 걱정이라 말한다. 이에 존은 흔들린다. 거액의 돈, 전처의 안타까운 삶, 망가진 아들을 향한 걱정이 살인이란 도덕적 딜레마를 만들고 있다.

영화 <세레니티> 스틸컷

하지만 존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존은 오랜 숙원이었던 참치를 잡기로 마음을 굳힌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어떠한 모종의 힘이 자꾸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메시지는 카렌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더욱 커진다. 카렌은 아들이 원하는 바라며 존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에 마음에 움직인 존은 살인을 모의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카렌의 제안을 거절하도록 움직이고 있다. 기상 시간 이전에 깨더라도 몸이 움직이지 않다거나,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인물들이 갈길을 막아선다. 그러자 어떤 규칙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누군가가 지켜보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결정은 낚시 회사의 직원 레이드(제레미 스트롱)는 뜬금없는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며 밝혀진다. 이 모든 것은 게임이라는 것. 게임은 살인을 할 수 없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그럴 생각이라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자기가 규칙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 대체 존은 무슨 일에 처한 걸까?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 +++++


영화 <세레니티> 스틸컷

영화는 사실 게임 속 세상이다. 평화로운 섬은 마치 연극 무대같이 제약적이다. 그래서 설정된 규칙을 깨고 의지대로 피력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열세 살 천재인 패트릭은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수정할 수 있는 전지전능함을 가졌다. 마치 신과 같은 존재이면서 우리 세상의 축소판인 가상현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게임의 주인공을 아버지로 설정함으로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카렌의 제안을 거절하도록 움직이고 있다. 기상 시간 이전에 깨더라도 몸이 움직이지 않다거나,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인물들이 갈길을 막아선다. 그러자 어떤 규칙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누군가가 지켜보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속이 진짜라고 믿을 만큼 비루한 현실 때문에 가상현실에서 살인을 도모한다. 게임 안에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마치 아들과 아버지가 영혼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믿게끔 꾸며 두었다. 다시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아들의 절절함은 ICT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만들어 낸 절박한 환상이 <인터스텔라> 속 부녀지간을 떠오르게 만든다. 메시지를 보내는 쪽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바뀌었을 뿐 세레니티(serenity, 평정)를 향한 마음이 닮았다. 존이 그토록 잡고 싶던 참치의 이름이 저스티스인 이유와 내가 규칙이라고 믿는 게 정의라고 말한 아버지의 말은, 둘만이 알 수 있는 교감으로 실현되었다.



평점: ★★★★

한 줄 평: 호불호 중에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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