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불륜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속 가난한 삶. 화려하고 싶지만 남루하기만 했던 젊은이의 인생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리얼하게 담은 <우묵배미의 사랑>이 재개봉했습니다.
첫날 공장 파트너로 만나며 운명을 감지한 두 사람은 첫 월급을 타던 날 야간열차를 타고 비밀스러운 샛길을 시작합니다. 넓고 환한 길 대신 계속해서 샛길을 찾아야만 하는 고달프고 궁상맞은 인생은 이내 꺼져버릴 것 같은 성냥개비의 불씨처럼 위태롭기만 합니다.
둘은 유부남 유부녀고 도피처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억세고 드센 일도(박중훈)의 아내(유혜리)와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는 공례(최명길)의 남편(이대근)을 벗어 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죠.
일도는 공례를 성적 판타지로 느꼈을 겁니다. 멋부리느라 흰 양말을 고집하는 일도를 타박하는 아내는 얼마나 귀찮은지 아냐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공례는 말없이 일도의 흰 양말을 손빨래해 가지런히 말려 놓습니다. 일도는 다소곳하고 지고지순한 그러니까 아내와 정반대인 공례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캐릭터의 필연성을 갖는 중요한 소품이 흰 양말인 셈입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밀애를 밤에는 어딘지 모를 변두리 여인숙을 전전하며 사랑을 나눕니다. 비싼 나이트클럽을 가거나 술집도 전전하지만 늘 갈대밭이나 비닐하우스를 전전하며 깡소주에 빈속을 달래죠. 그래도 둘이 있어 행복하기만 한 세상의 전부를 다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하루살이처럼 불같은 나날을 보내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영화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쁜 영화>, <거짓말>, <꽃잎>,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한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장선우 감독의 사실주의 멜로입니다. 1989년 '박영한'의 동명 연작소설을 스크린에 옮겼습니다.
1990년대 소외계층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연기 전환점을 가져다준 작품이죠. 그의 능글맞고 건들거리는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또 지금과는 다른 이미지의 최명길 배우와 강인의 여성 이미지의 유혜리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죠. 덤으로 이대근, 최주봉, 김영옥, 양택조, 서갑숙, 김지영 등 굵직한 한국 영화의 배우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은 서울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우묵배미로 돌아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가엾은 여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는 줄거리입니다. 80-90년대 한국경제를 일으킨 재단사, 미싱공이 주인공입니다. 요즘처럼 재벌 3세, 회장님, 연예인 등 화려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과는 차별점을 갖습니다.
성공을 꿈꾸던 남자 일도의 삶과 진실한 사랑에 목말라하던 비탄한 삶이 오버랩되며 반향을 일으킨 영화로 기억됩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제대로 포착했으며,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서민의 이야기라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