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니네이'를 좋아합니다. 현대극보다 시대극에서 빛을 발하는 재능은 맑은 눈망울과 깡마른 몸으로 표현됩니다. 이브 생로랑과 프란츠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문호 '로맹 가리'를 맡아 변신한 <새벽의 약속>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1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가의 삶을 정리하고, 펼쳐낸 축복스러운 러닝타임이었습니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프랑스의 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와 '피에르 니네이'가 모자 사이로 열연하며 작가의 생애를 표현하고 있는 영화인데요. 샤를로뜨 갱스부르는 중년과 노파의 모습을 오가며 극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을 키워야 하는 억척스럽지만 용기 있는 어머니 역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배우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죠
본명은 '로맹 카체프'. 러시아 태생의 유대계 프랑스 작가 겸 영화감독이며 프랑스로 귀화했습니다. 34편의 소설, 2편의 영화,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란 두 개의 필명으로 (한 번도 받기 힘든데) 두 번의 공쿠르 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가기도 하죠. 타이틀이 왜 이리도 많은지, 마치 타이틀 도장 깨기 달인 같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 조종사 장교로 참전해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받았으며, 프랑스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을 키워 낸 헌신적인 어머니와 작가의 사연을 영화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를 만든 8할은 어머니였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홀어머니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아들을 천재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로맹 가리는 어쩌면 태어난 천재라기 보다 어릴 적부터 안 가르쳐 본게 없는 어머니의 교육으로 만들어진 천재는 아니었을까요? 훗날' 너는 기필코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라며 반복해서 주입했던 말은 씨가 되어 세계적인 작가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톤은 로맹 가리가 어머니와 맺은 약속이자 지키지 못한 후회로 가득합니다.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전장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열망과 집념은 문학으로 승화되었죠. 그렇게 탄생한 문학은 전 세계인에게 읽히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연기와 어린 로맹, 사춘기 로맹을 연기한 배우들의 조합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한 인물의 생애를 영화 한편에 담아내는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만 위대한 작가를 만든 숨은 조력자의 숭고함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가난과 멸시, 연이은 실패로 실망하더라도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믿는 여느 어머니의 마음은 매한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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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성공한 후, 이번 일만 끝내면 이란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시간을 흘러가 있죠. 부모는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맹목적인 성공, 금의환향보다는 자주 연락하고,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후폭풍처럼 밀려올 후회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참, 쿠키영상은 없지만 로맹 가리의 어머니와 어릴 시절 사진 등이 엔딩 크래딧에 올라가니 자리를 떠나지 마세요! 작가의 삶을 영화로 담았다면 문학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영화의 원작 《새벽의 약속》과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 등 문학에 빠져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평점: ★★★
한 줄 평: 로맹 가리를 만든 8할은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