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를 위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 이나영 배우의 6년 만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은 <뷰티풀 데이즈>. <마담 B>로 칸이 주목한 감독이기도 하며, 실화를 모티브로 분단의 슬픔을 그렸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빠르게 다가가면 날아가 버리는 나비처럼, 천천히 관조하며 다가서야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병든 아버지의 권유로 14년 만에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아들 '젠첸(장동윤)'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런 곳에서 일하려고 나와 아버지를 버렸냐며 울부짖는 아들. 술집에서 일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한국 남자와 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젠첸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매처럼, 때론 연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자(母子) 관계는 서서히 빗장을 풀어나갑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는 시점을 중심으로 2003년, 2004년, 2014년, 그리고 1997년이란 네 시점을 짚어 나가는데요. 대사가 많이 없거니와 점프하는 회상이 불친절 할 수 있는 영화지만, 사연 있어 보이는 여성의 얼굴에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대체 왜 어머니는 14년 전 갑자기 집을 나간 것일까? 그녀를 중국에서부터 찾자온 아들에게 따스한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잠자리와 아침 밥상은 내놓지만 차가운 시선, 표정 없는 얼굴, 무뚝뚝한 말투가 전부죠.
사실 어머니는 비밀을 품고 있었습니다. 젠첸을 낳고 기르고 두고 나오기까지 굴곡진 인생은 그녀가 써 내려간 일기장에 적혀있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선족, 중국, 북한의 현실이 만들어 낸 상황 속에 놓인 여성의 삶을 강인하면서도 담담한 연기로 이나영 배우가 그려내고 있죠.
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대역 없이 한 얼굴로 그려낸 이나영 배우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잘 어울렸으며, 이재훈과 박해일이 보이는 차세대 충무로 루키 장동윤 배우는 섬세함과 아련함의 분위기를 넘어섰습니다. 어디서 이런 배우가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로 순수하면서도 거칠어 보이는 마스크, 그리고 유창한 중국어 실력까지 두루 갖춘 주목해야 할 배우임에 틀림없습니다.
후문에 따르면 대림동의 중국 슈퍼마켓에서 연변 사투리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중국 음식점 사장님에게 배운 중국어, 문화도 습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과 연변 등을 재현한 배경 또한, 중국 촬영은 단 한 컷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산 때문에 윤재호 감독이 5년간 답사한 내용을 토대로 재현한 파주시 금촌면인데요. 미장센, 연기, 캐릭터, 배경과 소품, 언어 등등 정말 모든 면에서 홀리는 영화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어머니이자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간 비극을 조명합니다. 그녀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상처를 준 가해자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는 그녀와 얽힌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며, 유일하게 아들인 젠첸만이 선택된 것 마냥 대등한 입장에 서 있죠.
아버지와 젠첸이 어머니와 맞닥뜨리는 에피소드도 데칼코마니처럼 닮았습니다. 다른 남성을 해하고, 어머니의 품에서 위로받는 장면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 이상의 모성, 인류애(愛)를 가진 성녀의 존재이기도 할 겁니다.
된장찌개는 상처와 슬픔, 그리움을 화해 모드로 전환하는 장치입니다. 어릴 적 먹지 않겠다고 투정 부리던 젠첸은 14년 만에 만나 차려준 밥상에서도 된장찌개를 먹지 않죠. 그러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밥상 장면에서 드디어 된장찌개를 비벼 밥을 먹습니다.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역설적 제목처럼 비밀을 품은 엄마의 과거를 찾아 나선 아들, 애써 용서를 빌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한탄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죠. 대신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장면으로 화해와 희망을 엿보게 합니다. 바로 <뷰티풀 데이즈>가 갖는 가족에 대한 진중한 서사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평점: ★★★
한 줄 평: 이름이 지워진 탈북자, 조선족, 엄마라는 여성의 담담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