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Dec 07. 2018

<샘> 꼭 첫사랑이어야 하나요? 지금 사랑은 안 되나요

<샘> 꼭 첫사랑이어야 하나요? 지금 사랑은 안

ⓒ 샘 / 황규일



영화 <샘>은 첫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안면인식 장애를 판정받은 남자의 첫사랑 찾기. 듣기만 해도 험난한 가시밭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왜 하필 제목이 샘일까요?  '샘'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상이 간절히 찾고 싶은 첫사랑의 애칭이며, 어릴 적 자주 갔던 샘터(그래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샘이라 부르는 것)의 샘이자, 솟아오르는 원천이자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샘, 누구나 샘이 될 수 있는 가변성



출처: ADAGP, Paris, 2010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샘은 첫사랑의 이름 변기연을, (어릴 적 이름 갖고 놀려봤다면 연상되는) 마르셀 뒤샹의 <샘>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르셀 뒤샹'은 남자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예술 작품이라고 했죠. 변기인지 예술 작품인지 헷갈리는 것. 뒤샹은 대량생산된 기성품에 서명함으로써 미술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왔습니다. 이 사조는 '레디메이드'라는 용어로 미술사에 기록되었는데요. 영화 <샘>은 뒤샹이 했던 행위처럼, 인공미와 자연미가 뒤섞인 예술작품인 셈입니다.



ⓒ 샘  / 류아벨,  최춘영




두상은 첫사랑을 찾기 위해 서울로 왔고, 거듭된 실패와 난항에 지쳐가니다. 퇴원하는 길에 얻어 탄 차주에게 가방을 도난당하고, 친구 집에서는 세입자와 마찰로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학 근처 배달 일을 하면서 만난 일본인 여자와 알쏭달쏭 한 하루에 어지럽기도 하죠. 결국 두상은 친구 성중에게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쯤 되면 관객도 헷갈립니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나죠. 순수하고 긍정적인 두상을 연기한 최준영과 1인 3역을 한 그녀 역의 류아벨의 호연 덕분입니다. 영화 <샘>은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를 독특함 속에 사랑에 관한 본질과 연속성을 잘 녹여낸 영화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웃음과 삶에 대한 희화는 우리의 삶이 일희일비(一喜一悲) 함을 나타내기도 하죠.


ⓒ 샘    최준영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구분이 안돼.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두상이 화장실에서 책 읽는 대목을 살펴보죠.  보물이 감추어져있다는 소문의 집은 그 진상을 떠나 신비한 마법에 걸린 듯하다는 말 기억하세요.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소변기도 누군가의 눈에는 예술작품이라 명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과 일상은 한 끗 차이, 첫사랑과 지금 사랑도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가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큐비즘, 반 고흐의 인상주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영화에는 유독 미술품과, 클래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두상의 마음과 영화의 주제를 말하는 은유인데. 친구  성중은 사랑에 신물 난다며 이제부터 독신이던 반 고흐를 인생 멘토로 삼겠다 합니다. 반면 두상은 여성편력이 강했던 피카소를 인생 멘토로 삼겠다 하죠. 뚜렷한 화가의 여성관에 따라 작품도 확연히 차이 납니다.

피카소의  큐비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얼굴이기보다는 여러 조각으로 깨진 알아보기 힘든 얼굴입니다.  반 고흐의 인상주의  야수파적 사조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반 고흐의 눈에만 보였던 세상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이란 감정은 표현할 수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형이상학적인 것입니다. 증명하려 하도 어렵고,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무엇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상은 두 예술가의 작품과 닮아있습니다.



ⓒ 샘 /  최준영, 류아벨



결국,  두상은  일어난 기묘한 우여곡절을  갈아 넣어 대본을 완성합니다. 영화 속 시나리오가  연극이 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합니다. 어쩌면 하룻밤의 꿈같기도 합니다.  한여름  울어대는 매미와도 같이 두상은  절박했더랬죠. 7년이나 캄캄한 땅속에 있다 단 한 번 교미를 위해  울어대다 죽는 매미의 변태처럼. 두상은 마침내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비로소 성장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플롯은 무엇이었을까요? 

인생을 살면서 처음 사랑이 그토록 애달픈 것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처음은 늘 새롭고 신비하고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지부진함과 반복하는 어리석음도 인간만의 일일 진대,  보다 매일에 충실하고 앞을 내다보는 현명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랑도 인생도 언제나 현재진행형, 그렇지 않나요?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rancesco_Salviati_-_Time_as_Occasion_(Kairos)_-_Google_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는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는 없습니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달아나 버려, 뒷머리라도 부여잡을 수 없기에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뜻하죠. 예전의 샘을 찾기 보다, 지금 샘과 잘 지내는 편이 낫습니다. 인생의 선택지에 반타작은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조언입니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는 건 어떨까요?





평점: ★★★☆
한 줄 평: 첫사랑 찾아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일리 어게인> 견주들의 믿음 소망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