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나 사이의 조용한 화해
무질서는
평생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때로는 발목을 붙잡고,
때로는 마음의 결을 흩트리며
늘 한 발 앞에서
나를 흔들고 괴롭혀 온 대상이었다.
그 오랜 싸움 끝에
내가 마주한 얼굴은 언제나
무참히 패배한,
후회의 빛이 가득한 나였다.
갖춰지지 않은 일탈.
부족하고 불편한 일상을 향한
작은 시간 여행.
분주한 시간을 절정을 끝내고
마침내 닿은 캠핑장,
오후의 적막 속 텐트 안.
지금 여기
노곤한 육신을 눕혀
쉼의 자리에 와 있으면서도
내 눈은 여전히
모서리의 각을 맞추고,
흩어진 것들의 자리를 가늠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질서.
예측.
능률.
절약.
그리고 가능성.
그럴듯한 이름을 두른 이 모든 것들이
내 집착과 싸움을
정당화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혼돈 앞에서
무력감으로 작아지고
더는 추스를 힘조차 남지 않아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나.
길을 나섰고,
그 길 위에서
쉼과 느림을 쫓으며
여유와 비움을 꿈꾸었음에도
나는 또 다시
한낮의 짧지 않은 시간을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세운 채
이 혼돈으로부터 도망치려 애쓴다.
역설이다.
무질서와 싸워 온 까닭이
어쩌면
내 삶의 바탕이 이미
무질서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또 한 번의 역설이다.
이제는 그 무질서와
천천히 화해해야 할 때가
온 듯한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조차
나는 다시
또 다른 혼돈 쪽으로 기운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내가 바라는 나는
무질서와 혼돈의 한가운데서도
자유롭고,
무방비하며,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다양함을
그 자체로
아름다움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흔들림 안에서만
비로소 드러나는 나의 중심.
그리고 오늘은
그 중심마저
없어도 좋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