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불편했지만, 그것이 곧 나였다.
사람마다 삶의 온도가 있다.
겉모습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몇 마디 말속에서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결국,
반복된 만남 끝에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의 온도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끝내 가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어정쩡한 미지근함이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지만
감정을 거두어들였던
나의 모습은
소름 돋을 만큼 서늘했다고 한다.
좋고 싫음이 분명했던 나는
늘 뜨겁거나, 혹은 차가웠다.
불 가까이 오래 머물 수 없듯,
얼음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듯,
나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삶의 온도는 어디쯤일까.
1970년대,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던 나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하루를 건너고 있었다.
청량리역을 지나던
삼 년의 혼란스러운 등굣길.
그 시절의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불편하고 불쾌한 온도였지만,
분명, 내 얀 어딘가에서
작은 불씨가 댕겨지고 있었다.
1980년 1월,
나라의 변고 속에 치러진 졸업식.
준비 없이 서둘러 지나간 그날은
두 번째 불씨를 건드렸지만,
거세게 일던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도
나는 교단 위에서
뜨거움보다
조심스러운 따뜻함으로
나를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걷던 거리,
내가 펼쳐 들던 책,
내가 만나던 사람들 속에서
그 불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만나는 모든 것에,
다가오는 모든 순간에
나는 온몸으로 반응했다.
쉽게 달아올랐고,
좀처럼 식지 않았다.
길가의 돌 하나에도,
들판의 꽃 한 송이에도,
흔들리는 풀잎 하나에도
나는 마음을 다해 다가갔고,
뜨겁게 받아들였다.
구름과 바람과 햇살마저
마음을 다해 품었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그 모든 감탄과 망설임이
내 온도의 결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모든 것이 선물은 아니었다.
나를 할퀴던 거친 온기와,
외면하고 싶던 차가움은
가슴 깊이 담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 뜨거움과 차가움 모두를
몸으로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아. ! ~ ! ? ^^ ;; ...’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내 온도는 숨길 수 없었고,
사람들은 쉽게 나를 읽어냈다.
그래서 나는
‘○○의 유관순’,
‘○○의 잔 다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세상을 바로 세우고 싶었고,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히 하고 싶었고,
단추를 바르게 채우고 싶었을 뿐인데,
그 작은 바람조차
누군가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온도였던 것이다.
낮출 수도,
버릴 수도 없었던 나의 온도.
그 안에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