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묻지 않았을까
우연한 마주침의 설렘.
그 후에 따라오던 뜨거움.
그 열기 속에서
나는 그에게로,
그는 나에게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서로의 경계가 흐려질 즈음,
모든 것은 너무도 익숙해졌다.
그의 눈빛 하나,
작은 몸짓 하나,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마저도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으며,
지켜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럴 것이라 단정하며
서로보다 앞서 나갔다.
어느 순간,
그는 내게 새롭지 않았고
나 또한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에게 설렘이고 싶고,
그는 여전히
내게 뜨거움이 되려 한다.
하지만
처음의 설렘과 뜨거움은
어느새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걱정과 변덕,
고집과 오만으로 뒤섞여
‘그’가 아니라
‘내 안에 만들어진
그’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순간마저도
이미 아는 것처럼
짐작과 확신이라는 소음으로
먼저 만나버린다.
이제는
내 안의 그를 지워야 한다.
어제의 그를 내려놓아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내 곁에 있는 그를 바라볼 때,
그는
다시 처음처럼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어야 한다.
낯설게,
그래서 다시 설레도록.
그가
처음의 설렘으로
내 안으로 걸어올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망각의 하루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