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흔적. 남김.

나는 그렇게 남기고 있다.

by 두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손에 닿는 것이 종이든,
책의 여백이든,
식탁 위에 놓인 냅킨이든
나는 늘

무언가를 긁적이고 있었다.


글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기호이기도 했고,
때로는 흉내 낸

악보 같은 선도 있었지만

무엇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버릇처럼 이어지던 손의 움직임이었다.


새로 도배한 벽에도,
즐겨 입던 청바지의 무릎에도,
식탁 위에도,
책 표지와 노트북 위에도

나는 가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우리는 그 일로

몇 번쯤 부딪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은 자국들은
집 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연필로 눌러쓴 흔적,
어설픈 스티커 자국들.

그 사이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붙어 있었다.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작고 서툰 우리들의 시간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조금은 수줍고 따뜻하게

낭만이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낙서를 받아낸 것들은
늘 내 삶의 중심에 있던 것들이었다.


식탁,
책,

내 손에 오래 머물던 물건들.


나는 그 위에
시간을 긁어놓았고,
그 사이에
사랑을 남겨두었다.


아이들이 짝을 찾아 떠나고
자리가 비워진 뒤에도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오늘의 낙서는
식탁 위 유리에서 시작되었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남기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한 줄을 그어 보았다.


투명한 표면 위에 남은
희미한 선 하나.


나는 그 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알 것 같았다.


나는
남기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지나가는 순간마다
조용히 흔적을 남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아주 작게,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지금 여기의 나를 남겼다.


이 순간 내가 있을

나의 삶의 중심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