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에 남아 있던 나
겨울의 시작은
가장 잔혹한 차가움이다.
퇴근길,
바람이 얼굴을 밀어냈다.
길모퉁이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쑥부쟁이 한 송이.
모진 바람을 견디며
혼자 서 있었다.
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
‘넌 왜 여기, 이렇게 혼자서…’
우두커니 멈춘 숨이
가슴 안에 아리게 머물렀다.
색마저 바랜 쓸쓸함이
만든 가슴 언저리 작은 구멍으로
바람이 일었다.
갈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잔상이 끊이지 않은
대로 아래 짧은 터널을 지나며
나는 또 멈췄다.
거친 콘크리트 벽 위에
어설픈 선들이 남아 있었다.
작은 손이 망설임 없이 그린
꾸밈없이 솔직한 선들
빛바랜 엉뚱한 색에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 구멍에 이는 가슴에
온기가 더해져
조금 전까지 불던 바람이
그 자리에서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터널 밖엔
지난밤 폭설에 눌린 나무들이
힘없이 기울어 있었다.
그 옆,
펜스에 기대 선
장미 한 송이.
차가운 공기를 그대로 안고
여린 꽃잎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앞에서 잠시 말이 멎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너, 혹시 나를 기다린 거니?”
대답은 없었지만
꽃잎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래 아름다웠기에
더 차갑고 시린 이름
겨울 장미.
시리고 아팠던 그 사랑은
이제는 보내줘야 할 사랑이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얼어붙은 물길 틈에
시린 발로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
몸을 움츠린 채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조용히 지나며
잠시 고개를 들었다.
같은 방향이었다.
오늘,
나는 몇 번이나 길을 멈췄고
몇 번이나 다시 걸었다.
쑥부쟁이,
바랜 낙서,
겨울 장미,
그리고 왜가리.
그 사이를 지나오며
나는
무언가를 다시 만지고 있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남겨두지 않았다고 믿었던 것들.
집에 도착해
문을 닫고 나서야
조금 늦게 알았다.
나는 오늘,
풍경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던
나를 지나오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