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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Sep 01. 2016

지하철 그리고 버스 괴담..

괴상하거나 이상야릇한 이야기

모처럼 가진 김교수님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지근에서 왕래하셨던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는 고(故) 신영복 교수와의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신교수님께서 생전에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셨던 모양이다.

하루는 김교수님과 이런 저런 대화 중에 말씀하시길,

지하철을 십수년 동안 타다 보니 용한 재주가 하나 생겼는데, 

지하철에 들어서면 항상 누구누구가 다음 역에 내릴지 훤히 보이기 때문에, 그 앞에 서 계셨다는 것이다. 

그럼 용케도 그 사람이 정말 다음 역에 내리면서 자연스레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소소한 이야기였다. 


동석한 사람들 모두 화기애애한 가운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 또한 추억의 나래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지하철 승강장..


아침 지하철, 지옥철, 아.. 지하철 생활권에 있는 사람 중 아니 경험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00년 1월, 서울에 올라온 후 그 해 여름까지도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다닌다는게 참 신선했고 재밌었다.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던 지하철역은 무척 높은 지상 승강장이었다. 그래서 순환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역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그렇게 선선하고 좋을 수 없었다. 

아마 그 곳에서 느낀 감흥으로 시도 썼던 것 같다. 


매일같이 지하철로 등하교를 두어 달 정도 하고 보니, 나도 나름 신교수님의 재주(?)가 생긴 듯 했다. 요일마다 첫 강의 시간이 다르긴 했지만, 적어도 이틀 이상은 출근시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지옥철 타임이다. 

그렇다고 지하철 타는 42분 내내 지옥철에 갇혀 있는 건 아니었다. 지옥 구간이 있는 것이다. 

그럼 지옥구간에 들어서기 전에, 자리에 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지하철 좌석은 한 줄이 7개, 좌우로 14개. 

만석인 경우, 1/14의 확률을 뚫어야 앉을 수 있다. 재빠르게 데이터를 입력하고,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직장인들의 경우 환승역에서 많이 내리기 때문에, 그 앞에 서면 성공율이 높은 편이다. 

만약 환승역에서 내 앞에 앉은 직장인이 내리지 않았다면, 다가오는 대학교역을 염두에 두어, 가방을 멘 학생 앞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등산복 차림의 어른들은 주로 외곽으로 멀리 갈 소지가 많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고, 가끔 지각한 듯한 교복 입은 학생들은 금방 내릴 여지가 많다. 어떤 부모가 그럴까마는, 등교를 위해 학생들이 멀리멀리 지하철 여행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복장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앉은자의 예비동작을 캐치하는 센스다. 복장 판단보다 먼저 빠르게 선행되어야 할 훈련이다. 지갑과 핸드폰을 손에 쥐었는지, 등을 등받이에서 떼었는지, 가방이나 핸드백을 매만지는지 빠르고 섬세한 스캐닝이 요구되는데, 예비동작이든 복장이든 지하철에 들어서고 3초안에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3초가 넘으면 지하철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이 되어버린다. 


직장인이 되고 지하철에서 버스로 넘어온 지, 5년차이다. 회사까지 가는 동안 고등학교는 단 두개 뿐이고, 그래서 교복은 쉽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취침을 하면서 오는 직장인들은 거의 나와 같은 곳에서 내린다. 잠은 장거리 여정이 보장되었을때 편하게 잘 수 있기 때문에, 자고 있는 사람 앞 대기는 금물이다. 간혹, 버스 정차와 함께 잠에서 깨어 깜짝 놀라 후다닥 내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요행을 바라면 안된다. 그 사람 자리는 로또 수준이다. 오히려 버스가 지하철보다 성공율이 낮은 점은, 예비동작을 간파하기 쉽지 않은 데에 있다. 버스 좌석은 지하철 좌석보다 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사리 예비동작을 취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눈을 맞추는 것이다. 흔들리는 동공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아침 버스 좌석 쟁탈전 승리의 지름길이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그것도 한 정거장만에 흔들리는 동공을 캐치하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안심이다. 그리고는 이내 500원짜리 지하철 티켓 끊던 시절의 옛 추억에 잠겼다.

버스 맨 앞자리..

내일 나는 다시 무수한 아이 컨택을 하러 버스에 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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