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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Dec 01. 2018

기본을 꾸준히 지키는 것, 그 자체가 힘이다

내가 스마트워크 특강을 준비하는 네 가지 원칙


2016년 봄을 시작으로 스마트워크 강연을 시작했다. 본업은 스마트워크 방식과 스마트 오피스를 연구하고, 실제 워크플레이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컨설팅이지만, 스마트워크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기업에서는 본격적인 도입에 앞서 특강을 의뢰하기도 한다. 스마트워트 특강은 시즌을 타지 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 꼴이지만, 강연하는 날은 여전히 시험보러 가는 것처럼 긴장되고 설렌다. 오늘같은 아침 강연일 때는 더 그렇다.


OO그룹 2018 리더십 컨퍼런스 강연


보통은 회사 근처의 카페에 일찍 가서 강연 내용을 리마인드한다. 기본적인 콘텐츠가 있지만, 강연 내용은 항상 다르다. 스마트워크 단계와 강연 대상의 직급에 따라 내용을 커스터마이징을 하기 때문이다. 전체의 30%는 청중을 위한 새로운 리서치고, 20%는 스마트워크에 관한 최근 업데이트다. (대략 두 주를 주기로 업데이트가 된다). 지난 3년간 강연한 내용을 하나의 파일로 정리한 DB가 있는데, 단순 키워드나 이미지를 삭제하고도 800장이 넘는다.   

3년 간의 스마트워크 특강자료를 모아둔 데이터베이스 (저작권 @최두옥)

그럼에도 나는 내 강연이 맘에 들지 않는다. 더 딕션이 정확하면 좋겠고, 더 유머가 있었으면 좋겠고, 여유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스마트워크에서는 원칙과 이론이 중요해서 강연 초입에 꼭 배경과 맥락을 다루는데, 이 부분도 딜리버리가 나아지면 좋겠다. 다만 아직은 이것들을 따로 연습할 여유가 없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스마트워크를 리서치하고 공부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기본'을 놓치지 않는 데 주력하고 있다.   



1. 강연장 에너지에 적응하기 위해 1시간 일찍 도착한다.


내 마음가짐이나 자신감과는 상관없이 몸은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게 적응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오감과 논리(머리)가 새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는 채 일 분도 안 걸리지만, 낯선 에너지에 세포들이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강연장에 1시간 일찍 도착한다.  


가능하면 실제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서보는 것이 좋고, 상황이 안 맞으면 객석에라도 앉아있는 것이 좋다. 앞에 강연이 있으면 청중으로서 앞 강연을 꼭 듣는다. 그렇게 강연 전에 충분한 시간을 현장에서 있어야 그 바이브를 내 강연에 반영할 수 있다.



2. 강연자료의 PDF 버전을 담당자에게 미리 보내 놓는다.


나는 MacBook으로 강연한다. 키노트로 자료를 만들기 때문이다. 카카오 같은 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기업들의 기본 OS가 대부분 윈도우다 보니 MacBook이 현장에서 바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최종 강연자료는 PDF 버전으로 전날 담당자에게 보내 놓는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레 슬라이드쇼나 영상이 중심이 되는 방식을 지양한다. 또 기본적으로 보안이 중요한 자료는 강연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정말로 자료 유출이 걱정된다면 현장에서의 사진 촬영도 막아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한번이라도 공개된 자료는 그게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불가. 타인에 의해서 퍼져도 피해가 크지 않은 자료만 사용하는 게 낫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 강연을 듣는 이들의 순수한 자료공유가 아니라, 내 강연 자료를 캡처해서 자신의 강연에 허락없이 끼우는 사람들이다. 한번은 나와 친한 사람조차 출처를 밝히지도, 사전 허락을 받지도 않고 내 슬라이드를 버젓이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이 분에게 원본이나 PDF 파일을 공유하진 않는다. 필요한 경우 사진만 찍어드린다.



3.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자리에 섰는지를 밝힌다.


내용에 집중하려면 집중해야 할 이유와 가치를 알아야 한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해당 주제로 글을 쓸 만큼 전문적인 경험이 있는지, 동기에 진실성이 있는지 살핀다.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책는 내내 '이 결론의 근거가 뭐지?' '정말 알고 말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고, 수도 없이 책을 덮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강연도 다르지 않다. 교육이든 특강이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왜 저 자리에 있는지를 알면 긴 시간동안 의구심 없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누군인지 소개하는 건 청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콘텐츠에 정당성을 입히는 기본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강연의 서두에 내가 누구인지를 소개한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회사를 다녔고,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와 강연을 했는지가 아니다.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집중해서 스마트워크를 연구해 왔다는 것. 그래서 내 자신이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스마트워크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 그 진정성이 소개의 핵심이다. 몇 시간을 앉아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강연인지에 대한 답변을 청중에게 먼저 주는 것이다.



4. 강연을 다 들은 담당자에게 피드백을 묻는다.


내 강연은 대부분 특강이라 평가가 없다. 하지만 이왕 하는 일 제대로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피드백이 필수다. 피드백을 얻는 방법 중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강연 직후 담당자에게 묻는 것이다. 행사를 어레인지만 한 담당자는 의미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청중으로 참여한 담당자의 피드백이 좋다.


처음 피드백은 언제나 빈약하다. 강연도 끝났고 연사-운영자라는 역할 차이가 있다보니 두루뭉실 좋은 이야기만 듣기 십상이다. 괜찮았어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기억에 남는 내용이 많습니다. 다들 만족하는 것 같아요 등등. 설사 중요한 실수을 알고 있어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해준다. 나 같이 직접화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 의도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상대가 뭐라도 이야기만 한다면 성공이다. 그 다음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리뭉실한 좋은말 대잔치 피드백을 듣고 나면,  나는 왜 피드백을 듣고싶어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저는 매주 강연을 해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강연을 들으러 오니까 한 시간만 강연을 해도 수백 시간이 들어가는 거죠. 그 시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저인데, 제가 하는 강연이 관객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정말 괴롭죠. 단순히 강연에서 잘하고 못하고를 넘어서, 만약 다음에도 강연을 한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고, 무엇을 계속 가져가야 할 지를 주관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면, 다음에 제가 책임져야 할 수백시간에 대해서 좀 더 책임감 있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진정성을 담아 '의도'를 설명하면 기적이 만들어진다. 두루뭉실하게 좋은 말로 마무리하려던 담당자들이 솔직한 자신의 피드백을 공유해 준다. 진짜 이유를 듣고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담당자들의 반은 그 자리에서 즉시 피드백을 주었고, 다른 반은 다음 날 땡큐메일을 통해  알맹이 있는 피드백을 전달해 주었다.



나는 점수로 따지자면 한 70점짜리 연사다. 지난 몇 년간의 연습으로 겨우 커트라인은 넘었지만, 스마트워크라는 주제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기에는 연구할 것도 노력할 것도 많다. 하지만 기본을 예외없이 오래 하는 건, 그 자체가 힘이다. 강연에 관한 이 원칙들은 나를 서서히 성장시킨다. 콧바람이 들어가소 거만해지지도 않게, 너무 자신감이 부족해 위축되지도 않게, 딱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내 강연을 들은 청중들의 시간을 다 합쳐도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없을 때까지, 스마트워크 디렉터 최두옥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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