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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Dec 07. 2018

진심이 담긴 사과의 최대 수혜자는 내 자신이다

불편함을 벗어나려는 사과가 아닌, 상대를 중심에 둔 진짜 사과를 하는 법


무의식적인 '미안해'는 하루에 수십번도 더 하지만, 의식적인 고민 끝의 사과는 나이가 들수록 드물다. 그렇게 어려운 사과를 하루에 두번이나 한 날이 있었다. 


불편한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사과 


일하다 보면 의견 차이로 인한 논쟁이야 일상 다반사. 하지만 현장에서 무언가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말 시간이 없는 경우나, 나름대로 공손하게 요청을 했지만 반복되는 경우에만 직접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흔하지 않은 상황이 이번에 발생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이유, 그리고 선의로 한 행동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허나 중요한 결정들을 빠르게 해야하는 입장에서, 실무자의 이야기가 계속 끝기는 상황은 - 그것이 순수한 의도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스마트워크 방식과 반대라고 느꼈다. 


그런 느낌이 세 번째라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스탑하길 원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는지까지. 인간의 대화라 당연히 감정이 담겨있었고, 상대의 감정실린 반응도 물론 읽었다. 그런 서로의 반응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그는 즉시 요청을 수락해 주었고, 덕분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실무자들의 이야기들을 깊이 들을 수 있었다. 미팅은 한 시간이나 늦어졌지만, 참가자들이 쓴 시간이 모두 합쳐 열시간이 넘는데 브레인스토밍이나 하다가 집에 가는 것 보다는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팅을 끝내고, 내 마음은 물론 편하지 않았다. 일적으로는 방향을 틀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주는 것은 별개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였기 때문에 무안함도 줬을지 모를 일이고. 나의 방식은 분명 엘레강스하거나 스마트하지 않았다. 아직도 대안은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이 상대가 느낀 불편함을 합리화해선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사과를 했다. 진행방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곤란하게 했던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싶다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불편함을 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자산이라 여겨주었다. 일을 더 잘 되게 하려는 의도였음도 알아줬다. 업무 파트너로서, 친구로서 믿음이 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해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사과 


퇴근 러시아워 시간에 마을버스를 탔다.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자리는 고작 10개. 한 손은 손잡이를, 한 손은 폰을 잡은 채 흔들리는 마을버스 안에서 꼬깃꼬깃 버티고 있었다. 방지턱 하나 없는 깨끗한 길인데, 마을버스 아저씨는 왜 그렇게 운전을 난폭하게 하시는지.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내 모습이 바람부는 날의 빨래 같았다. 


완만한 커브도 굳이 숨막히는 속도로 돌아주시는 터프한 기사님. 덕분에 옆에 있던 여성분의 발을 힐로 밟고 말았다. "아얏!" 그 아픔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의식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죄송해요"를 연발했다. 



그 여성, 정말로 아팠는지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진데도 계속 "아우- 아파"를 내뱉는데, 마을버스 한 정류장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처음 몇 번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돌려 "죄송해요" 사과를 했는데, 그것도 몇 정류장이 지나니까 줄어들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 없었던 일일 듯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상대가 나 때문에 발이 아픈데도 가해자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다. 옆에서 아파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걸 견디는 시간이 오히려 벌 같았다


허나 거북이같던 시간도 어찌어찌 흘러, 내가 내릴 정류장 안내가 나왔다. 나는 벨을 눌렀고, 내리기 전에 사람들을 헤집고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진짜 사과를 하기 위해서다. 


사실 처음에 발을 밟고 그녀가 "아야!"를 외칠 때마다 한 "미안해요" 나를 위한 사과였다. 한마디로, 내가 민망하고 불편한 상황을 넘기려고 한 본능적인 사과였다는 뜻이다. 그 사과의 중심에는 상대가 없었다. 


하지만 모른척 하며 몇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상대가 중심에 있는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운이 나빠 발을 밟혔고, 자기에게 고통을 준 상대와 어쩔 수 없이 한 버스안에 있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사과를 함으로써.      


"저, 아까 정말 죄송했어요. 조심히 가세요"    


처음 발을 밟혔을 때와는 달리 그녀는 놀라움 반 미소 반을 최적의 비율로 섞어 "괜찮아요"라고 답을 해 주었다. 그 사과는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었고, 버스를 내리는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진심이 담긴 사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민망함과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한 사과가 아니라 상대가 중심에 있는 진짜 사과는 그 뿌리가 내 마음에 있다. 그래서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는데는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혜자는 상대 뿐 아니라 내 자신도 포함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비록 늦었지만 내가 불편하게 한 사람들에게 상대가 중심인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 역시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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