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Jan 30. 2019

누구나 맘편하고 칭찬받는 곳에 끌린다, 집이든 회사든

저녁식사의 가치는 '먹는' 것 보다 같이 '나누는' 데서 나온다 


용인으로 이사온 지 6개월. 요즘 우리 가족이 암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가족과의 저녁시간이다. 


일주일에 몇 번, 몇 시에 먹는다는 룰은 전혀 없다. 약속이 있거나 귀가가 늦은 사람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경우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몇 달에 걸쳐서 '가족과 같이하는 저녁식사가 제일 즐겁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생겼을 뿐이다. 특히 이번처럼 누군가가 해외에서 돌아왔거나, 바쁜 일이 끝나면 더 응집력이 강해진다. 




저녁식사에서 나눠야 할 건 음식만이 아니다


저녁식사의 주된 행위는 같이 '먹는' 것이지만, 응집력의 핵심은 같이 '나누는'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머니는 팟캐스트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트럼펫을 시작한 동생은 요즘 어떤 곡을 연습하는지, 아모리는 온라인에 무슨 물건을 올려놨는지를 물어본다.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가족을 식탁으로 모이게 한다. 


저녁식사 전에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아버지와 동생



저녁식사를 같이 준비하며 경험을 공유한다


대화와 더불어, 같이 저녁식사를 같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리는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주로 하시지만, 전후의 참여는 모든 가족이 같이 한다. 오후 4시쯤 메뉴가 정해지면 덜 바쁜 누군가가 밖에서 재료를 사온다. 요리가 다 되면 동생이 테이블을 세팅하고, 식사가 끝나면 누군가가 후식을 내놓는다. 후식까지 마치면 다 같이 식탁을 정리하고, 나는 빈 그릇을 식기세척기로 옮긴다. 어머니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백을 채운다.


가족들이 같이 준비한 저녁식사. 동생은 세팅은, 어머니는 재료준비를, 나는 설거지를 한다



'함께' 다음에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두 시간에 가까운 저녁식사가 끝나면, 가족들은 거의 동시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기도를, 엄마는 유투브를, 동생은 티비를, 나는 넷플릭스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아무의 방해도 없는 자기만의 시간. 이 시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내일의 저녁식사가 즐거울 수 있다. 명확한 We 시간과 Me 시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누구나 잔소리 대신 질문과 칭찬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우리 가족의 We-Me 의 균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과정이 누군가의 요구나 당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합의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잔소리 대신 질문과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식사를 하고싶어졌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핸드폰은 당연히 식탁에 놓지 않고, 식사시간은 길어졌다. 이사오기 전인 6개월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중심


사회가 빠르게 돌아가고, 할 일은 많아지고,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과 떨어져 살고 연락을 줄인다. 나도 그랬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 답은 반대에 있었다. 세 개의 집을 하나로 합치고,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고, 바쁠수록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내고. 그러니까 정신없고 흔들리는 삶에 오히려 가족이라는 무게중심이 생겼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함없이 나를 딸로, 누나로, 사랑으로 맞아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해줬다. 



가고싶은 사무실, 만나고 싶은 팀원


밖에 있으면 '아 얼른 집에가서 같이 저녁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우리의 회사도 어쩌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큰 일이 생기면 '아, 얼른 우리 팀장님과 의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주말에 쉬다가도 '아, 얼른 우리 사무실 가서 팀원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회사. 


그런 회사는 거창한 구호나, 멋진 인테리어가 아니라 구성원이 편안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칭찬을 해 주는 분위기에서 싹이 트는 게 아닐까. 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원하는 관심과, 소통과, 사랑이 있는 사무실. 거창한 보너스와 트렌디한 복지를 도입하기 이전에, 언제나 가고 싶은 우리집 같은 사무실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실천의 시작이 리더인 나여야 함은 물론. 





매거진의 이전글 2019 비전서클, 한정된 시간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