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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Feb 15. 2019

배워두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세 가지

수영, 영어, 운전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운전 면허증을 갱신했다. 

벌써 10년이라니!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존경스러웠던 내가 이제는 하루만에 서울-광주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배워두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세 가지를 적은 적이 있다. 영어(English), 수영(swimming), 그리고 운전(car-driving)이었다. 대학시절 알바를 안 해서 졸업식 날 통장에 딱 300만원이 있었는데, 커피 값은 아끼더라도 이 세가지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고 생각했다.



처음 배운 건 수영이었다. 


당시 남친이 대기업의 프로그래머라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서 수영을 같이 끊었다. 물이 너무 무서웠지만, 시간없는 우리에게 옵션이 없었다. 자유형을 마스터했을 즈음엔 남친과 헤어졌지만, 수영 수업을 혼자 계속 들었다. 결국 배영/평영/접영까지 마스터하고 다이빙까지 배웠다. 


실연의 상처와 함께 마스터한 수영은, 그 아픔을 보상이라도 하듯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줬다. 필리핀에서 스노쿨링을 할 때, 부산에서 서핑을 할 때, 남프랑스 바닷가에서 수영을 할 때마다, 수영을 배워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두 번째는 영어였다. 


입시가 공부의 전부인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인 내게 영어는 시험 과목일 뿐이었다. 외국어 영역에선 만점을 받아도, 외국어 전화통화에선 덜덜 떠는 나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월스트리트인스티튜트'라는 영어 학원을 등록했다. 이 학원은 일반 학원과는 수업 방식이 많이 달랐는데, 당시엔 직장 초년생이라 돈이 좀 있어서 수백만원을 내고 1년짜리 멤버십을 끊었다. 


레벨 4에서 시작해서 9개월 차엔 최고 레벨까지 갔는데, 최고 레벨은 수강생 자체가 적다 보니 수업도 적었다. 퀄러티도 전 레벨과 다른 게 없고. 한마디로 나 같은 사람은 아직 주 고객층이 아닌 거다. 담당 매니저에게 관련해서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분도 힘이 없어서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중에 고급자를 위한 영어 사업을 하리라 결심을 하며 1년 간 수업을 마쳤다. 이후엔 학원 수업은 포기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영어를 공부해 오고 있다. 지금은 '슈츠'라는 넷플릭스 미드를 통해 성인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는 중이다. 


영어를 늘었다고 느낀 건, 어느 순간부터 영어로 말하는 게 편해졌을 때였다. 이후부터는 검색도 네이버가 아닌 구글에서 하고, 리서치도 영어 키워드로 시작했다. 전세계 문서의 50% 이상이 영어, 한국어는 1% 도 안되기 때문에 영어를 편하게 쓴다는 건, 한국어만 할 때 보다 50배나 더 많은 소스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만나는 사람의 범위도 훨씬 커지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내 남자친구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었는데, 내가 영어를 못했다면 애초에 맺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는 운전이다. 


어릴 때 사고를 목격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운전을 시작하는 게 힘들었다. 동생이 중고차 딜러를 오래 해서 집엔 늘 차가 많았고, 가족 중에 면허가 없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결심을 하고 필기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엔 복잡한 기능시험과 주행시험이 따로 있었지만 인터넷과 동생의 도움으로 면허를 쉽게 땄다. 


몇년 동안은 집에 남는 차를 타면서 띄엄띄엄 운전을 하다가, 3년 전에 처음으로 내 차를 장만했다. 실질적으로는 초보와 다름 없어서 주차하기 쉬우면서도 내부가 넓은 레이(Ray)를 샀고, 서울 시내의 주차도 두렵지 않아질 때 쯤 아우디(Audi)를 샀다. 운전이 익숙해지니까 엑셀에 올린 발맛이 좋은 차가 탐나더라.


운전은 확실히 삶의 반경을 넒혀주었다. 레이를 탈 땐 캠핑의자를 항상 싣고 다니면서 한강커피를 즐겼고, 주말에는 서울 도심 대신 외곽을 나갈 수 있게 됐다. 지방으로 강연이 잡히면 하루 먼저 가서 혼자만의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 


지금 일주일에 세 번 골프레슨을 받는데, 운전을 못했다면 골프는 시작 자체가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친구들이나 파트너들이 왔을 때 공항픽업을 갈 수 있는 것도 좋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휠체어 파일럿인 최영재 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직접 모시고 서울-분당을 왕복할 때도,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배워두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다음' 세 가지


수영, 영어, 운전을 모두 마스터한 지금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다음 것들을 생각해 보는 중이다. 골프, 발성, 프랑스어, 화장, 피아노, 프로그래밍... 조만간 우선순위대로 리스트가 만들어지면, 일년에 하나하나씩 배워보고 싶다. 삶의 젊음이란 끊임없이 배워가는 과정에서 유지되는 것이고, 삶의 재미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스며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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